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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각 선생 공덕비 기미년(1919) 제주도 만세운동의 함성이 멎은지 70여 성상이 흘렀다. 후손들이 그날의 민족정기를 올곧게 이어받고자 안타까워 하던중, 뒤늦게나마 북제주군과 조천읍민은 그 거룩한 넋을 기리고자 이곳 만세동산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 사업에는 재일 김봉각님이 거금을 쾌척 동참하였다. 님은 1921년 3월 4일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신흥리 133번지에서 조부 김해김공 해원(동서마을을 합하여 신흥리라 리명을 짓고 초대 이장이 되다) 조모 권갑순 부 광수 모 이해생의 장남으로 출행하였다. 9세의 어린 나이로 도일후 갖은 험로를 극복하고 18세에 안성옥 여사와 결혼, 슬하에 3남1녀를 두고 있다. 약관에는 계김동지회(김봉각, 강금종, 한만숙, 김병목, 고봉조, 부두전)를 결성, 독립운동에 뜻을 두어 활동하다가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항상 조국에 대한 불타는 정열을 간직하고, 또한 사업자로서의 성문도 높인 분이다. 이제 이곳 만세동산의 성역화 사업에 즈음하여 님의 높은 뜻을 기려 추진위원의 이름으로 이 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