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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세기말(十九世紀末) 일구(日冦) 밀려들어 이 나라 기울던 그 즈음에 장의(杖義) 부국(扶國)하시다 순(殉)하신 허다(許多)한 선열(先烈) 중(中)에서 山(산)같이 우뚝하신 이 바로 우리 의암장군(毅庵將軍)이시다. 이제 공(公)을 우러러 이팔년(二八年) 생애(生涯)의 열적(烈蹟)을 초(草)하려 함에 가을 서리같은 의기(義氣)와 눈 못 감으신 형장(刑場)의 유한(遺恨)이 한데 어울려 붓을 떨게 한다. 공(公)의 휘(諱) 용대(用大) 자(字) 중범(中凡) 호(號) 의암(義菴). 일찍 개항(開港) 6년(六年) 뒤인 고종(高宗) 19년(十九年) 서기(西紀) 1882년(一八八二年) 적성군(積城郡) 남면(南面) 경신리(庚申里)에서 나시니 광주 정씨(光州鄭氏) 시조(始祖) 고려(高麗)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적성사(門下積成事) 휘(諱) 신호(臣扈)의 21세손(二十一世孫)이시다. 고조(高祖) 휘(諱) 석린(錫麟) 호(號) 상산(商山) 헌종(憲宗) 원년(元年)에 문과(文科) 등제(登第)하시어 태안(泰安) 군수(郡守)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을 역임(歷任)하시고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오르셨으며 서기(西紀) 1845년(一八四五年)에는 처음으로 광주 정씨(光州鄭氏) 족보(族譜)를 편찬(編纂) 인행(印行)하셨다. 증조(曾祖) 휘(諱) 승수(承洙) 호(號) 호암(皓菴) 언(言) 충신(忠信)하시고 행(行) 독경(篤敬)하시어 향리(鄕里)에서 추중(推重)되셨다. 조(祖) 휘(諱) 인태(寅泰) 병자(丙子) 이래(以來)의 외구(外冦) 침범(侵犯)에 대항(對抗)하시어 위정척사(衛正斥邪)의 선봉에 서시고 1895년(一八九五年) 을미변(乙未變)에 감연(敢然)히 동지(同志)를 규합(糾合)하여 멸구(滅冦)에 정신(挺身)하시다 피해(被害)되셨으며 고(考) 휘(諱) 두환(斗煥) 또한 1896년(一八九六年)에 의병(義兵)으로 순국(殉國)하셨다. 의암공(毅庵公)은 고(考)를 이은 삼대(三代) 순국(殉國)이시니 입절(立節)이 동서고금(東西古今)에 없는 일이다. 비(妣) 풍천 임씨(豊川任氏) 유지(遺志)를 받들어 공(公)을 훈육(訓育)하시니 공(公) 개화(開化) 뒤의 나라와 겨레의 어려움을 보시고 조(祖) 고(考)의 순국(殉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