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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당시25세) 1964년 5월 6일 전북 부안 출생 1988년 인천에 있는 협신사에 입사 1989년 노동조합을 설립하여 적극적으로 활동 1989년 10월 29일 괴한에 의해 둔기로 턱을 맞고 사망 |31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64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졸업한 후, 표구기술을 배워 ’88 년 1월경 인천에 있는 협신사에 입사하여 근무를 하였고 성격은 내성적이고 온순 한 편으로 대인관계와 직장생활은 원만하였다. ’89년 2월 말 노동조합을 설립하 여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였다. ’89년 2월 27일 임금인상, 상여금지급, 연월차 및 생리휴가 실시, 노동조합 인정 등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결성한 후, 5일간의 파업에 들어갔다. 협신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이나 지 식이 미약했으나, 열악한 작업환경과 근무여건을 노동조합을 통하여 개선시키고 자 동지는‘평화의집’과‘인천민주청년회’에서 노동법 관련 교육과 토론 및 외부 의 집회에 연대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가졌다. 동지는 ’89년 10월 28일, 민주노 조 재건을 위해‘내일을 위한 집’에서 교육 및 상담을 받고, 주안역 인근에서 술을 마시다 말없이 술집을 나간 뒤, 새벽 주안4동 주차장 앞 노상에서 둔기로 턱을 맞 고 쓰러져 있는 것이 발견되어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사망하였다. 당시 경찰은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여 미제사건으로종결처리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동지는 열악한 작업환경과 근무여건을 개선하 고자‘평화의집’과‘민청’에서 노동조합 설립과 관련한 교육을 받았으며, ’89년 2 월 27일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는데 회사측의 불법ㆍ폭력적인 탄압으로 노동조합 이 와해되자 민주노조 재건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경찰은 노동조합 재 건위 관계자를 연행하여 조사하는 과정에서 욕설과 폭행 등 강압적인 수사를 하 였으며, 현장보존이나 당시에 수거한 피묻은 점퍼, 현장의 혈흔, 보도블록 조각 등에 대한 감식이나 혈흔감정 등은 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가 입고 있던 피묻은 점퍼를‘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전단을 만든다는 이유로 세탁해 증거물을 훼손하 는 등 범인 검거를 위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수사를 하지 않은 중대한 과오를 저 질렀음을 밝혔다. 끝내살리라 |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