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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39인. 상륙부대의 긴급구조요청을 받은 한국 해군본부는 유엔군에 지원을 요청하여 즉시 미육군의 스피어스 소령을 LT(해난구조선) 636호에 승선시켜 현장으로 보냈다. 이 배는 15일밤 10시경 부산항을 출발한 후 다음날 아침 7시경에 현지에 도착하여 LST문산호 구출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내가 너무 깊이 좌초되어 있어 구조에 실패하고 일몰과 동시에 돌아갔다. 한국 해군의 304정 역시 LST문산호를 구출하고자 출동하였으나, 시계불량으로 소재를 발견하지 못한채 풍랑이 심하여 구룡포로 돌아갔다. 드디어 9월 19일 새벽 5시가 지나서 LST함정 1척이 LST문산호로 접근해 왔다. 이 배는 LST조치원호로서 미 육군 소령 프랭크 스피어가 지휘하고 있었다. LST조치원호는 LST문산호 북방 400m, 육지로부터 약 30m 떨어진 지점에 배를 접안시켜 닻을 내렸다. 그리고 스피어 소령의 지휘로 유격대원 구출 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LST조치원호가 해안에서 너무 멀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보트를 활용하는 외에 해안부터 LST조치원호까지 밧줄을 연결한 후 줄을 이용해 유격대원들을 승선시켰다. 중환자부터, 제37연대, 사령부, 제32연대, 제29연대 순으로 탑승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매복해 있던 적들이 유격대의 철수를 눈치채고 맹렬하게 사격을 가해왔다. 천신만고 끝에 갑판에 올라도 적이 쏜 박격포탄에 대원들 상당수가 희생되었다. 낮 12시 정도에 끝난 것으로 예상했던 승선이 오후 3시가 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오후 3시 40분경, 결국 적의 역습으로 인해 LST조치원호 자체가 손상될 염려로 인하여 승선을 중단하고 출항할 수 밖에 없었다. 해안에는 아직도 39명의 대원들이 남아 있었다. 이미 배를 탄 사람들은 이 광경을 처절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떄 LST조치원호에 승선하지 못한 대원들은 대부분 북한군에게 포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