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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조국수호를 위해 기꺼이 신명을 불살랐던 호국영령들!
그 거룩한 뜻이 오늘에 꽃피워 우리는 지금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의 문을 활짝 열고 있다.
여기에 전몰전상 경찰및 학도경찰대원의 의열이 민족의 운명을 좌우함이여
호국경찰과 학도경찰대원의 충과 의는 해와 달을 다투어 밝고 산과 바다보다도 크며 그 장렬한 항쟁은 길이 청사에 빛날것이다.
여기 이 분들의 큰 뜻을 온 국민이 우러러 숭상하고 숭고한 애국정신의 귀감으로서 오늘에 되살리는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의무요 국민적 도리이기에 그 사실을 기록한다.
이곳 안성은 여순반란사건이래 6.25동란을 당하여 1,700여명의 인민군 패잔병과 공비들의 소굴로서 1951년 1월 중순까지 수복 못한 지역으로 인민공화국기를 게양하고 가진 만행을 감행, 비참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1950년 12월 3일 경찰관 260명 학도의용경찰 60명이 단지봉 탈환을 위한 합동작전을 개시 1차 탈환에 성공하였으나 12월 4일 새벽 적의 기습으로 전초기지에 매복 근무중이던 학도의용경찰대장 김수원과 11명중 김수원대장을 제외한 10명이 전사하였다.
이에 아군의 반격으로 적은 3명의 사상자가 발생 덕유산방면으로 퇴각하였고, 이후 14일간에 걸쳐 주야간 공방이 계속되었다. 1951년 1월 중순 육군 화랑부대의 진군으로 군경합동작전을 개시 안성면은 수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