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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부역 협조하지 말라는 통문을 발송함과 동시에 의병을 모집하여 호남 일대를 전전하면서 일헌에 항전하여 무수한 전과를 거두던 중 서기 1909년 기유 10월 일헌에 체포되여 광주감옥에 투옥 7개월간 심한 고문과 옥고를 겪으면서도 백절불굴하고 그들의 취조관과 법관에게 도리혀 대성질책하다. 결국 사형선고를 받아 서기 1910년 경술 5월 대구에 이송되여 동년 7월 18일 사형집행을 당하였고 동년 9월 9일 향리에 반구되였다. 한편 부인 김씨는 부군의 체포됨에 제하여 추호도 당황하지 아니하고 시부모에게 효양과 상장지도를 다하든 중 부군의 흉음에 접하을때 역시 엄연한 태도로서 조국을 위하여 순사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고 반관되자 관전에서 일곡 후 자결하였다. 아 장하도다. 당시 고관자들도 외세에 아부하여 안일과 부귀의 탐욕에 급급하였거늘 연소한 일원의 포의한사로서 일절의 사정을 버리고 최후 일각까지 구국에 헌신한 의사의 위충고절은 우리나라 삼충오렬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일찍부터 애국충성에 열렬하여 동분서주하시다가 후예도 없이 순절하였음으로 향리 사람들이 의사 부부를 번암면 대론리 원촌 도로변에 초라한 무덤으로 매장하니 무덤은 황초로 변하여 학정 36년간 쓸쓸히 지내오든 중 8.15광복을 맞아 장수 유림들은 의사의 묘를 보수하고 단갈을 세웠다. 또한 이곳에 의사의 추모비각을 건립하여 기 애국정신을 길이 이어받을 수 있는 터전을 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