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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동 유래비
'넓고 평평한(大平)' 또는 '큰 들(大坪)' 이라는 의미가 있는 이곳 대평동은 백제시대 소비포현 관내였다. 조선시대에는 공주목 양야리면에 속해 있었으며. 1914년부터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전까지 연기군 금남면에 속하였다. 1946년 6일 대홍수로 인해 금강제방이 붕괴되고 대평리 전체가 수몰되어, 면사무소를 비롯한 각급 기관과 시장및 민가들이 용포리로 이전하면서 '구 대평리'로 불리었다. '대평'이란 지명의 기록은 1547년(명종2년) 충청감사 김익수의 장계에 '연기는 동진과 대평이 물이 넘쳐(연기 동진, 데평주장)'라는 내용에 등장한다. 그리고 1874년(고종 11년에 공주겸임 우영장 정보현의 첩정에 '양야리면 대평, 기동, 신흥 3동은 모두 금상 상류 가에 있습니다.' 라는 기록이 있어 그 지명이 오래 전부터 있었음을 알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