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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천 홍범도 장군(1868.8.27 ~ 1943.10.25) 항일무장투쟁의 영웅, 고려인사회의 정신적 지주 타고난 게릴라전술을 구사하여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케 한 명장이다. 일본군은 이 같은 절세의 영웅에게 '날으는 홍범도'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1920년 6월 봉오동전투, 10월 청산리전투에서 일본정규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이주당했고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3년에 세상을 떠났다.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1주년과 광복 제77주년을 맞아 이날 오후 5시 광산구 월곡2동 다모아어린이공원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제막식이 열린 다모아어린이공원은 옛 소련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됐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고려인 후손 7천여명이 모여 사는 월곡동 고려인마을에 있는 공원이다. ● 1888년 8월 27일 평양에서 출생 ● 1891년 금강산 신계사로 들어가 지담(止潭)에게서 글을 배우고 민족의식을 키움 ● 1907년 정미의병에 놀란 일제가 무기를 회수하자 이에 반발하여 북청 후치령에서 의병운동을 일으킴 ● 1907 ~1908년 일본군을 상대로 37회의 전투를 치러 대승을 거둠. 일제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내 이씨(李氏)를 체포 처형함. ● 1910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 양성 모색 ● 1911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군자금 비축 ● 1919년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 되어 국내진군, 8~10월 혜산진과 만포진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둠. ● 1920년 6월 봉오동전투에서 일본군 300여 명을 사상시키는 대승리를 거둠. 10월 대한독립군단을 이끌고 북로군정서의 김좌진부대, 최진동 부대와 연합하여 청산리에서 일본군 3천여 명을 살상시키는 대승을 거둠 ● 1921년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하여 자유시사변을 겪은 뒤 한인 자치활동에 참여 ●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됨 ● 1943년 10월 25일 카자흐스탄 크슬오르다에서 사망 ●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 2021년 8월 15일 유해 국내봉환 대전현충원에 안장.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