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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의병장(1870~1908)은 나주에서 경주김씨 노학의 큰아들로 태어나 함평에서 성장하였다. 본명은 준(準) 자는 태원, 태중 호는 죽봉이다. 어려서부터 정의감이 강하여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고, 이후에도 사회적 폐단을 바로잡고자 앞장섰다.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빼앗기자 1907년 10월 기삼연이 이끄는 호남창의회맹소의 선봉장을 맡아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동생 청봉 김율 또한 형과 함께 의병에 투신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1908년 설날(2월 2일) 담양 무동촌 전투에서 '의병잡는 귀신'으로 불리는 요시다의 광주수비대를 격파하였고, 장성 토천전투에서도 30여 명을 살상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김태원, 김율 형제가 40여 차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일제는 제2특설순사대를 편성하여 '김태원잡기 15일 군사작전'을 세차례나 실시하는 등 체포에 혈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