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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산 황단과 황단제.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개화마을 화양산 정상의 삼극단(三極壇)에서는 제극(帝極, 上帝), 성극(聖極, 孔子), 황극(皇極, 高宗) 삼극을 제사 지내는 황단제는 중종의 아들 덕흥대원군의 후손인 수당 이덕응(1866~1949)이 조선의 광복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낸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제례는 북쪽을 향해 유교식 제례에 따라 지내고, 제물로는 생쌀과 생고기등을 전설한다. 이덕응은 1909년 각지에서 찾아온 제자들과 진안 대불리에서 강학을 시작한 이후 1910년 나라가 일제에 병합되자 화양봉에 올라가 제사를 지내며 고종의 만수무강을 기원하였다. 초기 제례에는 특별한 의식이 없었고, 수당이 혼자 산에 올라 망배(望拜)를 하며 고종의 만수무강을 비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1916년부터는 민준식,조병순,신기영, 송성기등 제자들과 함께 축문을 읽으며 본격적으로 제사 의식을 행하였는데, 이는 고종의 복위를 기원하는 복벽(復辟)운동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제사의 목적에 변화가 생길수밖에 없었는데, 수당은 종친을 통해 고종의 삼년상을 치르고 시호를 올리며, 만동묘를 모방하여 만세단묘를 세우자는 건의를 순종에게 하였다. 이는 일제에 굴복하지 말고 황제의 격에 맞는 장례를 치르고, 이를 통해 조선 황실이 건재하다는 걸 대내외에 알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순종은 '학문은 천인(天人)을 꿰뚫었고 의기는 해와 별처럼 빛나니 유학 적통이요 우리 동방의 유종(儒宗)이다. 이에 화양산에 높은 의리가 우뚝하니 바른 학문으로 순수한 충정을 가진 사람이다'라는 구두 비답을 내렸다. 순종의 비답에 고무된 이덕응은 단순히 고종황제의 만수무강만을 위해 기도하는 장소가 아닌 삼극을 제사지내는 삼극단으로 확대시켰으며, 스스로 명명삼극사(㝠㝠三極使)가 되어 광복을 기원하며 제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