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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編 각 문중 비문 모응 • 159 싫l條大夫議政府左參贊했判義禁떠‘결됐n 經鐘事兩館大提學520春秋館成:1침節홉~:-I止子li~좁客j'-i양 l냐|피面 순~;JIT뀔紀元後再T니十一렘j규 日 建 2. 비문 번역문 조선국(땐l따國) 통훈대부(通訓大夫) 행(行) 금산군수(鎬山部守) 이공(李公) 덕린(德、鄭)의 묘(훌) 영부숙인(宿因) 경주김씨(필州金民) 부좌(附左) 조선국(朝陣國) 통훈대부(通힘11大夫行) 금산군수(鎬山那守) 전주진(全씨‘|삶)관병마동첨절사 (管兵馬同했節制셋) 전의(全義)이공(李公) 덕린(德、獅) 묘갈(훌調) 우리 이(李)씨는 고려 태사(太삐) 도(1백) 이후로 충절의 재상으로 8백여 년을 이어 내려 왔는데 근세에 이르러 운이 쇠하여 관계에 들어가서 우수한 이름을 떨친 이가 적었는데 오직 나의 3종제(從弟) 덕린(德|憐)이 기질이 중후하고 기품이 헌상(딴爽)하여 집에서는 효 도를 다하고 비록 과장에는 나가지 않았으나 관계에 진출하였으며 모든 법도를 깊이 알아 서( nJ寫浚法) 기울어가는 집안의 명성을 떨칠 만 하였는데 불행하게 나이 겨우 49세를 일 기로 끝마치 니 천운이 우리 집을 폐하는 것은 아닌지, 아- 슬프도다 군은 자(子)를 자방(子차)이라 하고 목릉(젤俊)조(朝)의 명신, 이름은 제신(濟I표)이라고 하시며, 문무(文파)촌관('J디’) 북도(北道)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내시고 영의정에 추 증되고 호(號)를 청강(淸江)으로 삼덕(三德、)을 전하신 분의 후손이다 증조부의 이름은 행 원이시고 의정주 우의정을 지내고 효정(孝貞)공(公)의 시호를 받으시었고, 조부의 이름은 만최(萬最)이시고 사옹원(可寶院) 봉사(奉훤)를 지내시었다 아버지의 이름은 징해(徵海)이 시고 원주(原州)목사(收使)를 지내시었는데 해평(海平) 윤씨(尹民) 윤전(깅,-J팍)의 따님을 배 필로 맞으니 공의 어머니가 되신다 강이 관계에 입문하여 장릉(章I俊)침-봉(參奉) , 사재김-(司팬앞) 봉사(캘팎) , 장악원(掌樂|갚) 지장(直長) , 한성부(평城府) 참군(參單), 벙고(水庫) 별제(서u提) , 의금부(義禁府) 도사(都렐:) , 충훈부(파勳府) 도사(헤|嗤 ) , 돈녕 부(황寧府) 주부(注節) 판관(判官) , 외 직 (外q값)으로 영 천, 안 신-, 금산 3군 군수 역임, 그 고을을 번영하게 하였는데, 금산군민이 송덕비를 세우고 선정 을 칭송, 제방을 쌓아서 군민을 이 롭게 하였으므로, 지금도 그 제빙을 이공제(李公뚫)라고 부르고 있다. 신해(그F:tJ년에 김천에 있는 그 형의 임소에서 2월 21일에 작고히여 안산 양 τ촌(楊登村)에 안장하였다가 정사(T니)년에 양주 성산리 임좌(王坐)로 천정-(避經)하였다. 공은 진실하여 거짓이 없고 궁하고 빈한한 사람을 도와주는데 돈독하여 옛 현인의 풍토 가 있으므로 원근 종족과 친지들이 다 함께 칭송하였다 배위는 경주 김씨 돈녕(敎寧)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