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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살리라 |307|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밟은자취는없었습니다. 아, 나는다음날을위하여한길은남겨두었습니다. 길은길에연하여끝없으므로 내가다시돌아올것을의심하면서… 훗날에훗날에나는어디선가 한숨을쉬며이야기할것입니다. 숲속에두갈래길이있었다고, 나는사람이적게간길을택하였다고, 그리고그것때문에모든것이달라졌다고. 3) 들어가며 가지 않은 길. 그랬다. 의문사 유가족들은 가지 않은 또 다른 길에 대해서도 미련과 회한을 갖고 있다. 그러면 서도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그들이 걸어온 길은‘프로스트’가 말한“노란 숲 속에 난 똑 같이 아름다운 두 갈래의 길”은 아니었다. 의문사 유가족들에게 있어서 두 갈래 길 중에서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에서처럼 잊고 사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익숙한 길을 포기하고 기약 없는 진상규명의 노정을 걸을 것이냐 하는 선 택의 길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의문사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대책위 4) 위원장인 허영춘 5) 님은 이렇게 말 하고 있다. |306|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란숲속에길이두갈래로났었습니다. 나는두길을다가지못하는것을안타깝게생각하면서, 오랫동안서서한길이굽어꺾여내려간데까지, 바라다볼수있는데까지멀리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아름다운다른길을택했습니다. 그길에는풀이더있고사람이걸은자취가적어, 아마더걸어야될길이라고나는생각했었던게지요. 그길을걸으므로, 그길도거의같아질것이지만. 아무도가지않은길을 걸어간사람들 - 의문사 가족들 1) 의 투쟁역사 - 김학철 2) 1) 의문사 유가족들 의문사 진상규명을 이루기 위한 길에서 법제정 과정에는“유가협 소속 유가족들”과“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 (기념)단체연대회의”<이하‘추모연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고, 1996년 하반기부터는 거의 화학적인 결합을 이루어 가며 투쟁을 전개 해왔다. 법제정 이후부터는 의문사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대책위<이하‘유가족대책위’>와 추모연대, 그리고 계승연대 소속단 체들이 중심 역할을 하였다. 이 글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의문사 유가족들”또는“의문사 유가족”등으로 표기한다. 그리 고 입법을 위한 투쟁은‘민주화운동관련유공자예우및지원등에관한법률안’과 함께 진행되었는데 편의상 이 글에서는‘의문사진상규 명에관한특별법’을 중심으로 기술한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1988년 10월 17일 의문사 유가족협의회를 발족함과 동시에 기독교회 관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집단적인 투쟁을 전개한 때부터 기술한다. 그 이전의 투쟁과 관련하여서는 김유진, 「민주주의 이행기 과거 청산 운동의 동학-의문사 진상규명운동을 중심으로」, 성공회대학교 시민사회복지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2, 23~57쪽을 참조하 기 바란다. 2) 의문사진상규명을위한 유가족대책위 간사 /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 전 추모연대 진상규명위원장 3)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Robert Lee Frost 1874�1963] 미국 시인. 4) 이하‘유가족대책위’로 표기함. 5) 허원근 일병 부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의문사지회장 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