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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자 눈뫼 허웅(1918~2004) 생가터
허웅 선생은 동상동 965번지에 허수와 윤영순의 5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나, 김해보통학교(現. 동광초등학교)와 부산 동래고등보통학교(現.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일제의 핍박이 날로 심해지던 시절이었지만 외솔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을 읽고 학우들과 비밀 독서 모임을 이끌면서 항일 의지를 길렀고 1938년에 최현배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자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최현배 선생이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 사건으로 강단에서 내려오자 1939년 3월에 중퇴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독학하였다.
1940년부터 1942년까지 폐침윤(肺浸潤) 질환으로, 고향에서 요양하였는데 이때부터 15세기 국어 문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한글 연구에 매진한 것은 또 다른 독립운동이었다.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징용을 피하고자 창원에 있는 사설 강습소에서 서기를 하다가 광복을 맞아 고향 김해에서 한글 강습소를 열어 한글 강습 강사로 활동하였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부산대학교,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가, 1957년 5월부터 1984년 2월 퇴임할 때까지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임하였다. 퇴임 후에는 연세대학교 석좌 교수로 초빙되었고, 2004년까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와 중국 상하이외국어대학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1971년부터 2004년까지 한글학회 이사장과 회장을 역임한 기간에는 초등학교한자교육 반대, 한자 혼용 반대, 한글날 공휴일 제외 반대, 한글날 국경일 제정, 한자교육 진흥법 반대 등 한글전용 운동의 최선두에서 활동하였으며, 국어 문법 체계를 확립하였고, 한글을 언어 과학적으로 분석 연구하여 세계의 그 어떤 문자보다 한글이 우수함을 알렸으며,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남긴 수많은 저서는 국어학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데 크게 기여했다.
'우리 옛말본' 머리말 중의 다음 글은 허웅 선생의 언어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민족의 말은 그 민족의 창조적인 정신 활동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졌고 다듬어져 가는, 민족정신의 가장 거대한 소산일 뿐 아니라, 이 말은 또한 민족의 고유한 정신을 형성하는데 어떤 요인보다도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눈뫼 허웅 선생은 평생 우리말을 갈고닦아 한힌샘 주시경, 최현배 선생의 대를 이어 국어학계의 거장으로 존경을 받았다. 후학들은 허웅 선생을 “한힌샘 주시경 선생이 국어학의 주춧돌을 깔았으며, 외솔 최현배 선생은 그 위에 집을 지었고, 눈뫼 허웅 선생이 그 집을 마무리하였다."라고 표현한다. 2004년 1월 26일 87세에 영면하였고, 남양주시 모란공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이에 동상동민들은 김해가 한글 역사의 뿌리 깊은 고장임을 널리 알리고 우리말과 글을 갈고닦고 지킨 국어학계의 큰 별인 한글학자 눈뫼 허웅 선생을 기리기 위해 여기에 그 공을 새깁니다.
2015. 10. 8. 동상동민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