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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익희 묘소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신익희(1894~1946)의 묘소이다. 신익희는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관립 한성외국어학교 영어과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교 정경학부를 졸업하였다. 1918년 윌슨 미국 대통령이 각 민족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민족자결주의를 발표하였다. 이에 힘입어 산익희는 독립을 위한 민중 궐기를 기획하였고, 중국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을 찾아가 만나고 돌아와 1919년 3.1독립만세 시위를 이끌었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로 간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처음부터 참여하여 임시 헌장의 기초를 세우고, 초대 내무차장, 법무총장, 외무총장등을 맡아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또한, 독립을 위해서는 중국과 연대한 무장 투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중국 국민군에 들어가 제2군 육군중장이 되었다. 1929년에는 사상과 감정을 초월하여 독립운동 역량을 하나로 통일하고자 한국혁명당을 만들었고 다른 정당들과 통합을 추진한 끝에, 1935년 5개 정당을 통합한 민족혁명당을 세웠다. 1938년에는 민족혁명당에서 조선의용대를 만들어 중일전쟁에 참전하였다. 뒤에 조선의용대의 광복군 편입과, 1944년 연립 내각을 세우는 데 이바지하고, 내무부장이 되었다. 1945년, 신익희는 26년 만에 돌아와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반탁운동과 공산당 국제조직인 코민테른에 반대하는 투쟁을 선도하는 한편, 국민대학교를 세우고 초대학장이 되었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 초대 국회 부의장에 선출되어 헌법 제정을 주도하였으며, 부의장에 이어 국회의장을 제3대까지 연이어 지냈다. 1955년 야당인 민주당을 만들고, 1956년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는데, 한강백사장에서 열린 유세에 40만 인파가 모이기도 하였다. 5월 5일 새벽에 유세하러 전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국민장으로 장례를 치렀으며,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신익희의 묘소에는 제물을 차려 놓는 상석, 향로를 올리는 향로석, 문인 모양의 문인석, 불을 밝히는 장명등, 한 쌍의 돌기둥인 망주석 등 돌로 만든 석물들이 있으며, 원형 봉분의 아래쪽에는 병풍석을 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