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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군 병천시장에서 의사(義士) 김구응이 남녀 6400명을 소집하여 독립선언을 할 때 일본헌병(일경)이 조선인의 기수(旗手, 행사 때 대열의 앞에 서서 기를 드는 일을 맡은 사람, 곧 조선인들)를 해치고자 했다. 조선인들은 맨손으로 이를 막느라 피가 낭자했다. 그러자 일본 헌병은 이들의 복부를 칼로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라, 김구응이 일본 헌병의 잔인무도함을 꾸짖자 돌연 총구를 김구응에게 돌려 그 자리에서 즉사케 했다. 김구응은 머리를 맞아 순국했으나 일본 헌병은 사지(四肢)를 칼로 난도질했다. 이때 김구응의 노모(최정철 지사)가 일본 헌병을 향해 크게 질책하자 노모마저 찔러 죽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략(韓國獨立運動史略)>(김병조 지음, 1920.6, 국한문혼용으로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번역함, 76쪽.)
이는 1919년 4월 1일,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이 일어난 바로 이듬해에 김병조 선생이 상해에서 펴낸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김병조 선생은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으로, 상해에서 임시정부에 관여하면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이듬해인 1920년 6월 <한국독립운동사략(韓國獨立運動史略)>을 지었다.
출처 : 광주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