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page
151page
임청각역사문화공유관
151page
홍주의병 재봉기지인 지티리의 역사적 의의
홍주의병은 을사늑약 이후 일어난 항일 구국운동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치열한 항전을 벌였던 의병이다. 이곳 부여군 내산면 지티리는 홍주의병 2차봉기의 결의를 다진 발원지로써 타 지역 의병봉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나아가 독립운동 정신으로 계승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부여군 내산면 지티리에 위치한 홍주의병 재봉기지에 기념공원을 조성하여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의병들의 순국정신을 후세에 알리는 역사속의 기념과 교육의 장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홍주의병 봉기개요
홍주의병 참여 부여군 독립유공자
이용규(李容珪, 구룡면 죽절리) : 참모, 의병모집, 욕지도 유배, 애국장
홍순대(洪淳大, 은산면 합수리) : 우군관, 고군도 유배, 애족장
조병두(趙炳斗, 은산면 장벌리) : 유격장, 애족장
송순묵(宋淳默, 부여읍 쌍북리) : 좌군관, 대마도 유배, 애족장
151page
지티 재봉기 의의
합천전투 이후 흩어진 의병들은 1906년 5월 9일 홍산군 지티(現 부여군 내산면 지티리 142 일대)에 모여 민종식을 중심으로 다시 봉기하였다. 다음날 홍산군 관아를 점령하고, 이후 서천, 비인, 남포, 보령, 오천, 결성을 거쳐 5월 19일 홍주에 진입하였다. 특히 삼신당리(現 마온리-옥암리 일대)에서 일본군을 격퇴한 후 몇몇 의병들이 성안으로 잠입, 성문을 열어 성을 점령하였고, 홍주성을 지키고 있던 관군과 일본군은 덕산 방향으로 도주하였다. 5월 20일부터 일본군과 의병 간의 산발적인 전투가 있었는데 성벽에 의지한 의병들의 거센 저항으로 일본군과 진위대가 홍주성으로 증파되었고, 주변 지역 의병부대 또한 홍주성이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홍주성에 집결하여 5월 25일에 의병부대를 재편성하였다. 그러나 5월 31일 새벽 3시, 일본군의 조양문 폭파를 시작으로 홍주성 사방으로 공격을 시작하였고, 의병들은 시가전을 벌이며 저항하였지만 아침 7시 의병부대의 패배로 전투가 종료되었다. 1895년과 1906년 두 차례에 걸친 홍주의병은 홍주문화권이라는 지역적인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출신 계급을 떠나 일제에 상당한 위협을 주었고, 이후 전국적인 의병전쟁과 더불어 국내외 애국계몽운동과 항일무장투쟁과 다양한 분야의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