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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처럼 큰 안경을 쓴 형을 보며, 상상처럼 멋진 선배는 아니지만(참고로 그 시절 성균 관대 방송국 국장은 송중기였다. 그 사실을 알고 경희대에 온 걸 처음으로 후회했다), 그래도 이렇게성격좋은선배와함께한다면대학생활이참즐겁겠다는생각을했다. 그이후이어진보이스테스트와면접을거쳐나는VOU의수습국원이되었다. “안녕하십니까, 55기수습아나운서최란입니다!” 대면식 날 수십 번을 외친 그 인사가, KBS 사원증을 목에 맨 것 마냥 나를 기분 좋 게 했다. - 시작 새벽 다섯 시. 아침잠이 많은 내가, 대학에 가면 늦잠 잘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행 복했던 내가 한 학기 내내 다섯 시면 일어나 학교로 향했다. 인천에서 학교까지 꼬박 두 시간이 넘는 등굣길도 그땐 참 즐거웠다. 캠퍼스로 가는 길 오프닝 음악을 들어야 아침을여는느낌이었고, 발성연습을해야하루를제대로시작하는느낌이었다. 스무 명이 넘는 동기들과 회의실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아침 모니터를 하고, 시답지 않은 이 야기들을나누고, 골목분식점에서아침식사를하는일! 지금 생각해도 그리운 풍경이다. 그렇게 바쁜 아침을 마치고 여학생 휴게실에서 미친 듯이 부족한 잠을 자면서도, 언니・형들처럼 방송하고 싶은 마음에 힘든 줄을 몰 랐다. 방송국 생활이 만만치 않다고 처음 느낀 건 여름 모니터 때였다. 성매매 특별법 취 재를 위해 집창촌을 찾고, 끼 없는 친구가 오글대는 연기를 하고, 머리를 못 감고 안경 까지 쓴 서로의 모습을 감상하고, 계속되는 연습과 녹음으로 쉬어버린 목에 삼겹살로 기름칠을 해가며 열심이었다. 부족했지만 넘치는 열정으로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그 리고 최선을 다한 만큼 열심히 까였다. 그땐 선배들의 말 하나하나가 마음을 콕콕 후 벼 팠다. 특히 열심히 강습해준 아빠(김지현형)가“실망이네요”라는 말을 뱉을 때에는 눈물이 절로 흘렀다. 무튼 선배들의 쓰디쓴 피드백 덕분에 여름 세미나에서 YB 배지 기별 Essay |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