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page

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그것은 밀양이 갖는 입지 조건과 문화환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If'세종실록지리지』를 기준으로 볼 때, 당시 밀양은 本府에만 인구가 1,612戶(口 5,522)에 짧田이 10,285結로 당시 경상도의 대읍이었던 경주(1,552호, 19,733결), 안동 (847호, 11,283결), 김해(1,290호, 7,809결)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다. 특히 밀양에는 守 山提가 있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밀양에서 살았던 金宗直도 ‘밀양 향교의 請子들에게 주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밀양이 지니고 있는 유리한 조건을 지적한 바 있다. 밀양은 고을이 된 지 오래인데, 산천이 옷깃이나 띠처럼 둘러 있어 말고 웅 장하고 깊고 아늑하다, 토지가 비옥하여 백성들은 부유하고 산에는 닥나무와 윷나 무, 곰과 범, 金石과 竹喆의 이로움이 있고, 물에는 網蟲, 裵찾, 魚、體, 森훌 등이 넉 넉함으로, 물물교환을 하려는 사람들이 사방에서 모여드니, 비록 이곳을 동남쪽의 한 都會라고 하더라도 될만하다 백성들은 또한 곡식을 심어 가꾸고, 누에치고 길 쌍하는 일에 부지런하고, 조세와 術|武를 치르는 데도 민첩하니, 윗사람이 만일 仁 義로써 점차로 다스린다면 교화시키기도 쉽고 부리기도 쉬울 수 있다 4) 이같은 입지조건이 이곳 재지세력 중심으로 문화와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데 밑거름 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 밀양지역의 문화적 조건이 어떠했는지 구체적 자 료를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음의 t材흉의 詩는5) 밀양의 문풍을 이해하는 데 도움 이 될 것이다 山那多佳麗 名高冠-方 산이 많은 이 고을에 佳景도 많아, 유명한 소문 한 지방에 드높아라. 地靈A 自傑 野決歲頻懷 지세가 영험하니 인물도 걸출하고, 평야도 비옥하여 해마 다 뭉년일세. 路控빠車會 風存禮義~~Ií 도로가 이어져 배, 수레 모이며, 美風이 남아 있어 예의 밝은 고을이네 多情如쩍那 總景甲餘抗 선비들 많기로는 園那과 같고, 빼어난 경치는 餘抗보다 으 뜸이라네 .... 4) [ë샘畢爾文集』 권 1, 與密陽쟁따交諸子書: 5) r西河集」 권 2, 古律詩, 遊密~'I‘|書;事 - 1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