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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1592~1598) 때 북평사(北評事) 정문부(鄭文孚, 1565~1624) 선생이 의병을 일으켜 함경도 길주, 백탑교 등지에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왜병들을 격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승전비이다. 그러나 정문부 선생의 업적은 선생을 모함한 무리에 의해 가려지고, 오히려 선생은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선생이 돌아가신지 43년 후에야 모든 것이 밝혀지고, 선생이 돌아가신지 85년 뒤인 1708년에는 그곳에 부임했던 함경도 북평사(北評事) 최창대(崔昌大, 1669~1720)가 글을 짓고 이명필(李明弼)이 글을 써서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臨溟)에 고을 주민의 뜻을 모아 마침내 북관대첩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약 200년 후 러.일전쟁(1904~1905)이 일어나자 이 지역에 주둔한 일본군 이케다 마사스케(池田正介) 소장이 이 비석을 읽어보고, 자기네 조상들의 패전 기록임을 알게 되자 비석을 뽑아 일본으로 보내버렸다. 그 후 비석은 일본 왕실에서 보관하다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로 옮겨졌다. 이러한 사실은 도쿄(東京)에서 활동하던 최서면(崔書勉) 선생이 1978년에 옛 기록을 검토하다가 1909년 당시 일본 유학생이었던 조소앙(趙素昻, 1887~1958) 선생이 대한흥학보에 기고한 글을 읽고 처음 알게 되었으며, 이 비석 또한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그 후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수차례 비의 반환에 노력을 기울여 2005년 10월 20일에 비를 반환받게 되었다. 이 비석은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에 관한 귀중한 역사적 자료인 동시에 남.북간의 잃어버린 역사성을 회복하고 한.일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는 증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으로부터 반환된 북관대첩비는 남북 협의에 따라 2006년 3월 1일 북한에 인도되어 본래의 자리인 함경북도 김책시에 복원되었으며, 이 비석은 원래의 비를 그대로 복원하여 경복궁과 독립기념관 2곳에 이어 세번째로 2007년 6월 25일 충의사에 세운 복제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