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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297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위치한 스웨덴은 중립정책을 표방하는 영세중립국이었으나 6・25전쟁에 제일 먼저 의료지원단을 보냈다. 의사 10명, 간호사 30명, 기타 행정 등의 요원을 포함하여 160명으로 적십자병원을 편성하여 1950년 9월 28일 한국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부산에 200병상 규모의 병원을 세웠으나, 점점 커져 400병상까지 늘어났다. 스웨덴 야전병원단은 1957년 4월 철수할 때까지 6년 6개월 동안 한국에 체류했는데, 이는 6・25전쟁에 파견된 의료지원부대 중 가장 오랫동안 머문 것이다. 전후 스칸디나비안 교육병원으로 바뀐 스웨덴 적십자병원은 많은 중환자 치료와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 향상에 기여했다. 인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호응해 1950년 11월 초 의료지원 부대의 파견을 결정하였다. 의료지원 인력은 의사 14명, 행정관 1명, 보급관 1명, 위생병 329명으로 구성되었다. 1950년 11월 20일 부산에 도착한 제60야전병원은 2개 제대로 나뉘어, 본대는 영연방 제27여단에 배속되어 영국군을 직접 지원하였다. 분견대는 대구에 주둔하면서 한국 육군병원을 지원하는 한편 한국 민간인에 대한 진료도 실시하였다. 이 병원은 1951년 7월 28일 영연방군을 통합한 영연방 제1사단이 창설되자 그대로 사단 야전병원으로 그 임무를 수행하였다. 인도 야전병원은 수준 높은 의술을 발휘하여 참전 부상 장병을 진료한 공로로 한국 정부 등으로부터 많은 훈장을 받았다. 덴마크는 의료지원국 중에서 병원선을 파견한 유일한 국가이다. 8,500톤 규모의 화물선을 병원선으로 개조한 유틀란디아(Jutlandia)는 356개의 병상을 갖춘 네 개의 큰 병실과 수술실, 엑스선 촬영실, 치과 시설을 갖춘 현대적인 해상 종합병원이었다. 1951년 3월 초 부산항에 도착한 뒤 초기에는 부산항을 거점으로 지원했고, 1952년 11월부터는 유엔군 사령부의 명령에 의하여 인천항에 정박하며 의료지원을 실시했다. 전선이 가까워서 후송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틀란디아호는 유엔 사령부에 999일간 배속되어 24개국에서 온 4,981명의 환자를 치료했으며, 6,000여 명의 한국 민간인들을 돌보고 치료했다. 이탈리아는 1950년 8월 국제적십자연맹이 6・25전쟁의 전상자 치료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자 의료지원 부대의 파견을 결정하였다. 이탈리아 적십자사는 군의관 6명, 행정관 2명, 약제사 1명, 군목 1명, 간호원 6명, 사병 50명으로 구성된 제68적십자병원을 편성했다. 대량의 의약품과 부수기재를 준비하여 수송선편으로 이탈리아를 출발하였으며 11월 16일 부산에 입항하였다. 제68적십자병원은 150병상 규모였으며, 서울 영등포에 위치하여 유엔군 장병 및 한국 민간인에 대한 진료 활동을 실시했다. 휴전 후에는 주로 민간인 진료 및 구호업무를 담당했다. 병원의 연 근무인원은 128명이었으며, 1955년 1월 2일 한국에서 철수했다. 덴마크 kingdom of Denmark 노르웨이는 1950년 당시 안전보장이사회의 비상임 이사국으로, 유엔이 의료지원 부대의 파견을 요구하자 적십자사를 통하여 의료지원 부대를 파견했다. 1951년 6월 22일 의무 및 행정요원 83명으로 구성된 60병상 규모의 이동외과병원이 한국에 도착했다. 이후 병력이 추가로 보충되어 근무 인원이 106명으로 증가되었다. 파견 기간 중 대부분을 서울 북쪽에서 미 제1군단 예하 각 사단에 대한 의무지원을 실시했으며, 주변 민간인들도 치료했다. 이동외과병원은 휴전 후부터 주로 민간인 진료를 실시했으며, 1954년 10월 18일 철수했다. 이 병원요원은 6개월 단위로 교대되었으나 100여 명이나 연장 근무를 지원하였으며, 연 근무 인원은 623명이었다. 노르웨이 kingdom of Norway 스웨덴 kingdom of Sweden 이탈리아 Italian Republic 인도 Republic of In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