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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66년 대구에서 출생한 동지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과자나 실컷 먹어보자며 과자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채이고 얻어맞으며 굴러다니다 제법 대우받는 기술 자가 된 동지가 식민지 땅 군사독재의 슬픈 노동시장에서 마침내 터득한 진리는 노동해방 민중해방은 자주 민주 통일세상이라야 성취할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그리하여 고생 끝에 얻은 소시민적 안락의 기회도 접어버리고 대구에서‘새로운 청년회’를 조직하고 청년운동을 시작하였다. 동지는 연령으로 구분된 일반청년이 아니라노동농민여성등각부문의근로청년운동에뿌리를내리고자하였다. 이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을 부활코자 투쟁의 선두에 선 동지는 구국전 위사건으로 4년의 옥고를 치르고 나서 갓 출옥한 처지였음에도 민주주의민족통 일대구경북연합에서 횃불을 들었다. 그리고 6.15시대를 맞이하여 전국연합의 최 대현안 사업인 통일연대와 민중연대의 지역조직을 꾸리는데 그 누구보다 천신만 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동지는 복잡한 정세를 명쾌하게 읊어내는 달변가는 아니었어도, 정치적 입장 의 첨예한 대립을 정리하고 이끌어가는 논리정연한 사람은 아니었어도 해야 할 일과 방향이 정해지면 불같이 자신을 던져 뚫어내는 개척자, 선두자였다. 대구경 북지역의 민족민주운동은 동지가 움직이는 만큼 만들어진 역사가 있다. 전진하여, 앞으로 앞으로만 전진하여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과 통일조국 건설 의 그날을 위해 멈출 줄 모르고 투쟁했던 동지. 동지는 불혹의 산수유, 거대한 불 도저였다. 이영기 (당시38세) 대구 현대공원묘지에 안장 1966년 출생 1988년 대구새로운청년회 준비위원 1992년~1994년 대구새로운청년회 회장, 대구경북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 회장 1993년 한국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 조국통일위원장 통일선봉대 동군 총대장 1994년 구국전위사건으로 구속, 4년 선고 1998년 출감 1999년~2002년 민주주의민족통일 대구경북연합 집행위원장 2002년 대구경북통일연대(준) 집행위원장 2003년 대경연합 의장, 범민련 대경연합 감사 2004년 민주주의민족통일대구경북연합 의장 대구경북민중연대 공동대표 겸 상임집행위원장 대구경북통일연대 상임공동대표 2004년 8월 3일 밤 11시 57분 운명 끝내살리라 |299| |29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