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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산남의진에 입진하여 권규섭, 성낙희, 성낙호, 이하수, 양석용과 함께 신녕지방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약관 24세이었으므로 군중 내에서 그를 24장(將)이라 하였다. 그후 선봉장이 되어 영덕, 강구, 흥해 등지에서 적과 교전하여 격퇴시키고 포장(砲將)으로 임명되어 맹활약하다가 1907년 9월 입암전투에서 적과 접전하던 중 의병장 정용기는 순국하고, 황보 근은 부상을 입고 귀향하여 치료하던 중 체포당하게 되었다. 왜경에게 17차례에 걸쳐 고문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굴하지 않다가 석방된 후 은신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지역정보포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