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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33년 경남 산청에 태어난 동지는 ’51년 2월 유격대원이었던 남편 성석조를 찾 아 입산, 빨치산으로 활동하던 중 ’63년 12월 입산 13년만에 지리산 내원골에서 최후의 여자 빨치산으로 체포되었다. 동지는 체포 당시 입은 총상으로 오른쪽 다 리를 절단 당한 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85년 가석방으로 출소할 때까지 복 역하였다. 출소 후 갖은 고생을 겪다가 비전향 장기수 생활터인 서울 낙성대 만남의 집에 서 지냈으며, ’99년 뇌출혈로 쓰러져 왼쪽이 마비되었고 그 후로 인천 나사렛한 방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였다. 쓰러지기 전까지도 북에 간 비전향장기수 선생 님을 만나고 싶다며 2차 송환에 대한 간절한 소망으로 투병생활을 하였다. 그러 나 ’04년 3월 16일 끝내 의식을 잃고 사투를 벌이던 중 4월 1일 운명하였다. 정순덕 (당시71세) 화장 후 파주 보광사에 위패 1933년 6월20일 경남 산청군 삼장면 매월리 출생 1950년 성석조와 결혼 1950년 9월 남편 찾아 지리산에 입산 1951년 2월 지리산 진양군 유격대에 편입 1952년 1월 18일 남편을 마지막으로 만남(그 뒤 전사했음을 확인) 1953년 9월 노영호 부대에 편입, 덕유산으로 옮김 1963년 11월 입산 13년 되던 해 지리산 대원골에서 토벌대와 전투 중 다리 총상, 체포됨 (오른쪽 다리절단) 그 뒤 재판에 회부, 무기징역 선고, 대구, 공주, 대전교도소 등 23년 간 옥고 1985년 8월 15일 8∙15 특사로 가석방, 음성 꽃동네로 들어감 1988년 자립하기 위해 꽃동네에서 나옴 1989년 부산에서 가족공장 등 노동에 종사 1990년 서울에 올라와 아이스크림 공장, 가구공장 등에서 노동 1992년 구로동에서 양복걸이 공장 등 여러 곳 옮기며 어렵게 살아감 1995년 8월 낙성대‘만남의 집’으로 들어감 1999년 3월20일 뇌출혈로 쓰러져 뇌수술 받음 1999년 4월 6일 오랜 수면 상태에서 깨어남(왼쪽마비) 1999년 4월30일 인천 나사렛 한방병원으로 옮겨 한방치료를 받아 옴 2000년 9월 2일 비전향장기수 1차 송환요구 했으나 당국의 거부로 못 감 2001년 2월 6일 “전향 무효”선언과 함께 2차 송환 촉구 2004년 3월 16일 전신반점, 고열 등 증상으로 인천 길병원 응급실로 옮김 2004년 4월 1일 오후 7시 15분, 통일조국 그 날을 보시지 못한 채 운명 끝내살리라 |297| |296|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