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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그때 그 자리~ 서울농대 민주열사 김상진 김상진 열사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산학과 68학번으로, 1975년 4월 11일 바로 이 자리에서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에게 준엄한 경고의 내용을 담은 "양심선언문"을 낭독하고 할복 자결을 감행했던 민주열사 입니다. 1975년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가 극에 달했던 시기로, 공산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구실로 유신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라는 것을 발동하여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잡아 가두고 고문과 폭행을 일삼던 때입니다. 그해 3월 언론자유를 외치던 『동아일보』 기자 18명이 해고되어 길바닥에 내몰렸고, 4월 8일에는 고려대학교에 긴급조치 7호가 발동되어 교정에 군대가 진주했으며, 9일에는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을 사형 판결 하루 만에 처형하는 사상 초유의 사법살인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청년학생 김상진은 이 암울한 시국을 보며 몹시 분노하고 고뇌했습니다. 1975년 4월 11일, 서울대 농대 캠퍼스 잔디밭에 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시국성토대회가 열렸고 이 집회에 세 번째 연사로 등장한 김상진은 직접 작성한 '양심선언문'을 읽는 도중 미리 준비했던 20㎝ 과도를 품 안에서 꺼내 자결을 감행했습니다. "애국가를 불러달라"는 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김상진의 주검은 사망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경찰에 의해 탈취되어 장례식도 없이, 가족의 동의도 없이 서둘러 화장되었습니다. 이 사건 한 달 후 5월 22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학생 천 여명이 "김상진열사 추도식"을 거행한 후 대규모 시위로 이어져서 수많은 학생이 구속, 제명되었고 79년 박정희대통령이 사망하기까지 계속된 학생 시위의 촉발점이 되었습니다. 김상진의 양심선언과 할복자결은 70년대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직접 쓴 '대통령에게 드리는 공개장'이나 '양심선언문'에는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현실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사단법인 김상진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