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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치신 박인생 독립유공자의 넋이 잠들어 있다. 공은 1903년 8월 19일 표선면 성읍리에서 부 종신 모 옥구이씨 학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홍금득과 혼인하여 딸 수옥을 두었으나 후사를 얻지 못하여 송당리 본가 병규의 아들 영옥을 양자로 들였다. 영옥은 연주 현씨 계생과 혼인하여 남손 호길 상길 순길 여손 경순 정순 윤순을 두었다. 장손 호길은 제주 고씨 유생과 혼인하여 증손 수로를 두었다. 수옥은 진주 강씨 군평과 혼인하였다. 장남 문식은 증손 희철을 삼남 명식은 증손 윤철을 두었다. 1924년 제주농고를 졸업하고 동년 광주농고에 편입학한 공은 1925년 광주 학생권에서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결성된 성진회의 서기로 활동하였고 1927년 일본 早稲田(와세다)대학 정경학과 2학년 재학중 성진회의 회계를 맡았던 장재성과 대판 노동조합 집행위원으로 활약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