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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까지 올라가보았지만, 만송 선생의 증손의 공적비였다.
선생의 후손분들 중에 박사분들이 많으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아온 이후에 통화가 되었다.
만송 선생의 묘소는 재실 뒷편 증손자 묘에서 조금 더 올라가야 된다고 하신다.
또 석벽은 이 산이 아니고 산을 넘어가야 있다고 하신다. 다음에 다시 찾아뵙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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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漆谷)군 북삼(北三)면 숭오(崇烏)동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침탈하자 을사조약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여론을 환기하였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자 일제의 불의와 이완용 등의 매국행위를 통박하고 한국인은 일본에게 세금을 내어서는 안되며 은사금도 거절해야 함을 역설하고, 일제총독 사내정의의 송덕비를 세우려는 친일분자들의 행동을 반대하여 규탄하였다. 1918년 자기의 주장을 스스로 실천하여 양조(釀造)를 하고는 일제에의 세금납부를 거부하였다. 일제 경찰이 그를 투옥하자 굴복하지 않고 투옥 7개월만에 8일간 단식하여 옥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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