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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세하여 왜군이 주둔한 장수읍을 함락하였고 익년 8월 거창에서 왜적과 접전한 후 진주의병장 유종환과 함께 전북 진안 용담 금산 등지에서 격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리었다. 1907년에는 박춘실을 선봉장으로 하고 공과 문태서를 중군장으로 연합의병대를 편성하여 장수 무주의 덕유산과 구천동 적상산 진안 천봉산과 성수산 등지에서 60여차례 유적전과 백병전을 벌여 왜적 300여명을 사살하고 무기 400정을 노획하는등 혁혁한 전공을 거두었다. 1909년 2월에 안의 4월에는 거창에서 혈전고투했으나 의병의 많은 사상과 피해가 있었다. 익년 8월 한일합방으로 국권을 빼았기자 1901년 1월에 다시 의병을 규합하여 장수 양악에서 왜적과 치열한 사투를 벌인 끝에 피체 대구감옥에 투옥되었으나 즉시 탈옥하여 합천 유원중 택에서 피신하던 중 불행하게도 다시 체포되었다. 왜경의 모진 고문과 악형에도 끝내 굴하지 않고 7일간 단식과 함구불언 끝에 안타깝게도 동년 3월 7일 옥사하니 향년 41세였다.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헌신하여 형극의 길을 걸어온 애국애족의 성스런 일생이었다. 1909년 무주군민들이 의병장 전성범 박춘실 문태서 장군의 항일전공을 기려 공적비를 건수하였으나 왜경에 의해 강제 철거되고 말았다. 서거 71년만에 민중과 손 한식 창식 형제가 의병항쟁사와 재판기록 등을 모집하여 1982년 8월 15일 정부로부터 애국지사로 대통령표창 1990년 12월 26일 건국훈장 애족장 1994년 6월 1일 국가유공자증을 받으니 오직 일편단심 나라를 위한 공의 위훈이 현현케 된 결과이다. 배위 하동정씨는 일두 문헌공 정여창 선생의 후손 환세의 따님으로 1878년 6월 14일 출생하여 1920년 6월 22일 졸할 때까지 왜적의 온갖 만행과 악형을 감내하면서 공의 높은 뜻을 이루게 한 현숙한 반려자였다. 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안산에 공과 합장되었는데 함양군을 통해 국비 지원을 받아 1994년 10월 29일 새로인 묘역을 단장한 바 있고 광복 50주년이 되는 오늘 장군의 애국위훈을 면암 의병록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운동사 함양군지 안의읍지 등의 문헌에 기초하여도 그만 돌에 명하니 평생 나라를 위한 공의 숭고한 애국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