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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용(당시25세) 1964년 11월 2일 충남 천원 출생 1983년 인천에서 공장생활 1987년 산업재활원 방문, 환자들을 위로하면서 고통당하고 있는 재해자들과 삶을 같이함 1989년 계양구 박촌동 소재 흥업사에서 손가락 4개가 짤리는 산업재해를 당함 1989년 4월 9일 부평 철마산에서 산재 없는 세상을 열망하며 분신하여 운명 |29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세의 어린 나이에 정든 부모님과 어린 아우의 곁을 떠나면서“부모님 제가 도시에 나가 열심히 일하여 부모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그날까지 고생이 되더라도 참고 견디십시오”라는 말을 하고 인천에 왔다. 동지는 저임금과 12시간의 장시간 노동속에서도 주일이면 산업재활원을 방문 하여 고통당하는 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 자 회사에서는 남달리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였다. ’89년 3월 1일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하여 안전장치도 없는 프레스에서 작 업하다 오른손이 잘렸다. 동지는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병원 산업재 활원에서 재활 기술을 배우기를 희망하였으나, 회사와 병원의 거부로 그것마저 이루지 못하였다. 흥업사 사장은 기업주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지기는커녕 회사직 원 4명을 동원하여‘회사에 잘못이 없다’는 내용의 각서에 도장을 찍지 않으면 치 료를 받을 수 없다는 협박과 공갈을 서슴치 않았다. 결국 동지는“내가 죽으면 중 앙병원 영안실에 안치해 달라”며, 죽어서도 산재노동자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유 서를 남기고 산재 노동자의한을 가슴에 품은 채 온몸에 불을 붙여 산화해 갔다. 동지는 산재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영리에만 치우쳐 노동자의 생명과 생존권을 말살하는 자본가를 신랄히 비판하면서 숨진 것이다. 끝내살리라 |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