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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행동하는 지성의 표본, 진보적 학술운동과 민주적 교수운동의 대부, 민중운동 의 한복판에 선 민중의 벗’동지는 이렇게 불렸다. 동지의 학문적 관심은 민족적, 민중적 사회과학을 일구는 것이었다. 동지는 민 족과 계급이라는 두 개념을 버팀목으로 하여 비판적인 노동∙조직∙산업사회학 을 구축하는 데 힘썼다. 동지는 ’80년 전두환 군사정권에 의해 학교에서 쫓겨났 다. 그러나 수난은 동지를 조직가∙실천가로서 변모시키는 자양분이 되었다. ’82년 문을 연 개인연구실인‘상도연구실’은 산업사회연구회로 성장하며 당시 진보학술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80년대 후반 이후 진보적 교수운동과 학술운동 의 큰 틀로 자리잡은‘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학술단체협의회’의 창 립과 발전에도 동지의 노고가 컸다. 동지는 전노협∙민주노총∙사회진보연대∙진보네트워크센터∙전국민중연대 등의 고문 또는 대표로 일하며 민중운동의 든든한 버팀목 구실을 하였다. 동지는 ’80년대 이래 기층 민중운동단체들에 대한 든든한 후원자였다. 동지는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을 남은 이들에게 부탁하며 먼 길 을 떠났다. 반역의서슬이꽁꽁얼쿤아랫목에서도구둘장을껴안고봄을빚는빠알간한티불꽃, 그것 은무엇이던가. 바로김진균교수가아니던가. 그렇다. 한방울한방울떨어지는피눈물이속절 없이자자드는것같아도땅속깊이여울지다가마침내거센바다로굽이쳐간다는그피눈물 한방울은또누구던가. 바로김진균교수가아니던가. 그바다의벼랑을깨트리고자알알이제 몸을바쳐, 높고낮은데가없는큰그릇한없이커가는그릇, 바라란참말로누구란말이다. 바 로김교수가아니던가. - 추모집‘벗으로스승으로’에서발췌- 김진균 (당시67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37년 11월 20일 경남 진주 출생 1961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1968년�1980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교수, 사회학과 교수 1980년 7월 31일 서울대학교 교수 해직 1984년 8월 31일 복직 1984년 7월�1988년 7월 한국산업사회연구회 창립. 1, 2대 회장 1988년 7월�1991년 7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공동의장 1990년�1995년 전노협 고문 및 전노협후원회 공동대표 1990년 1월�2002년 서울사회과학연구소 창립, 소장 1994년 6월�1996년 11월 한국산업노동학회 회장 1994년�2002년 3월 지식인연대, 사회진보를 위한 민주연대 대표 1995년 민주노총지도위원 1998년 11월�2002년 2월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 2004년 2월 14일 암으로 별세 끝내살리라 |295| |29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