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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섭 선생은 경기도 김포(金浦) 사람이다. 1919년 3월 24일 김포군 고촌면(高村面) 신곡리(新谷里)에서 김정국(金正國)·윤재영(尹在英) 등과 같이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인근 주민 50여명을 규합하여 신곡리 뒷산에 모이게 한후에,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전개하다가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일경에 피체되었다. 이해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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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영 선생은 경기도 김포(金浦) 사람이다. 1919년 3월 24일 김포군 고촌면(高村面) 신곡리(新谷里)에서 김정국(金正國)·윤주섭(尹周燮) 등과 같이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인근 주민 50여명을 규합하여 신곡리 뒷산에 모이게한 후에,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일경의 무력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시위하다가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피체되었다. 같은 해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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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옥(윤치장) 선생은 경기도 광주(廣州) 출신이다. 정미 군대해산을 당하여 통분함을 금치 못하여 국권을 바로 잡고자 1907년 음력 10월경 동지 70여 명을 규합하여 거병하였으며, 대체로 광주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음력 12월경 광주군 묵동(墨洞)에서 일본 기병대와 전투하여 그의 부하 8명이 전사하였다. 1908년 음력 2월 중군장 오사과(吳司果)외 2명으로 하여금 광주군 언주면(彦州面)에 사는 박승호(朴勝浩)에게서 군자금 1백원을 거두고 그를 의병에 입대케 하였다. 또한 박승홍에게 돈 40원을 주어 경성(京城)에 가서 탄약을 구입해 오도록 명하였는데 1908년 10월 11일 양주(楊州)에서 적에게 체포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이 일경에 노출되어 1909년 3월 23일 경성 공소원으로부터 징역 1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