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page


148page

공은 휘가 주대 자는 성범 호는 설송이며 정선인이시다. 고려 두문충현 전법판서 오륜공의 13세손 진사 세량공 증손으로 휘 재연공과 밀양박씨의 4자로서 고종 7년 1870년 6월 13일 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에서 태어났다. 본디 용의가 준정하고 기골이 장대하며 기상이 호매하고 효용이 절이하므로 사람들의 촉망을 한 몸에 받앗다. 16세에 선친을 잃었으나 효우의 천성이 돈독했으므로 백중 숙형을 엄부와 같이 섬겨 대소사를 품의하여 처결했으며 현우귀천을 가리지 않는 선각자적인 사상을 가졌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공을 따르고 흠모하였다. 공은 5세때부터 한문을 사숙한 이래 문충공 연재 송병선 선생에게 사사를 받아 유학에 진력하였으나 국운이 기울자 청운의 뜻을 펴지 못하고 애국애족의 형극의 길을 선택하였다. 고종 42년 1905년 11월 한일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망국의 비운을 당하자 1906년 5월 덕유산에서 봉기한 전 사헌부시평 면암 최익현 선생의 휘하에 경남 안의의 전성범 문태서 전북 옥강의 문형모 정읍의 임병찬 전주의 최학엽 유예로 익산의 박이환 전남 영광의 김병섭 등의 의병장들이 기병하여 구국의 선봉에 섰다. 동년 9월 전북 장수 양악에서 의병장 박춘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