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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공립농업학교를 나와 1926년 11월 전남 광주에서 광주고등보통학교 출신 장재성·왕재일 등과 학생비밀결사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이들은 평소에 일제의 조선 지배에 반감을 품고 조선의 독립을 꿈꾸었으며 민족의식이 강했고, 당시 지식층 사이에서 광범하게 수용되고 있던 사회주의 사상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성진회는 ① 일제의 기반에서 한국의 독립을 쟁취한다. ② 일제의 식민지 노예교육을 절대 반대한다. ③ 언론·출판·결사의 자유를 요구한다 등을 강령으로 삼았다. 박인생은 동회의 서기를 맡아 회의 운영을 주도했다. 그러나 성진회는 회원 중 한 사람이 광주경찰서 형사와 혈연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비밀이 누설될 염려가 있어, 결사 5개월 만인 1927년 3월 정남균의 집에서 전술상 해산을 결의하였다. 이후 비밀보장을 위해 모임을 갖지는 않았지만 이들 구성원들은 각 학교 단위별로 활동을 계속해 나갔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