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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 전투, 고지를 탈환하라! 1950년 8월, 다부동은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이곳의 방어선이 붕괴되어 대구를 빼앗긴다면 더 이상 북한군을 막을만한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다부동 전투의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북한군의 공세에 밀려 국군의 방어선이 왜관~다부동~신녕~기계~포항을 잇는 선으로 조정되면서 다부동 전투의 서막이 열렸다. 다부동은 왼쪽으로는 328고지, 수암산, 유학산의 능선과 오른쪽으로는 가산 팔공산의 험준한 지형으로 이어져 있는 곳이었다. 대구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자 최후의 보루였기에 다부동 일대의 고지에서는 연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대혈전 끝에 국군은 북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다부동 전투는 낙동강 방어선 전투 중 가장 처절한 전투였으며, 6·25전쟁 전 과정을 통틀어 최대 격전이었다. 이 전투에 투입된 병력은 아군 약 11,000명, 적군 약 30,000명이 넘고, 병력 손실은 아군 약 10,000명(전사 3,500여 명), 적군 약 17,500명(전사 5,600여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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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부동 지역의 국군과 북한군 전력 비교 ▷ 병력 - 국군(7,600명) : 북한군(21,500명) ▸국군 : 제1사단 7,600명(학도의용군 500여명 포함) ▸북한군 : 제1사단 제14연대 1,500명, 제3사단 6,000명, 제13사단 9,000명, 제15사단 5,000명 ▷ 화력 – 국군(172문) : 북한군(670문) ▸국군 : 105㎜ 곡사포 12문, 57㎜ 대전차포 18문, 60㎜ 박격포 80문, 81㎜ 박격포 50문, 3.5인치 로켓포 6문 ▸북한군 : T-34 전차 20대, SU-76 자주포 20문, 122㎜ 곡사포 20문, 76.2㎜ 곡사포 60문, 14.5㎜ 대전차총 170문, 45㎜ 대전차포 50문, 61㎜ 박격포 180문, 82㎜ 박격포 150문, 120㎜ 박격포 20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