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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공훈비 / 강진원(姜振遠) 1878~1921 전남 순천 쌍암 두월
1907년 고종 강제 퇴위, 정미7조약 강제 체결 및 대한제국의 군대해산으로 분노한 민중들이 전국에서 의병 투쟁을 시작하자 강진원 장군은 조계산에 입산하여 주변지역 의병들과 의병부대를 편성하였다. 순천 조계산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다 전 임실군수였던 조규하(趙圭夏).박접(朴接) 등 의병부대와 합류화여 활동하였으며 1909년까지 순천.곡성.여수.고흥.광양.구례.전북 남원을 무대로 일본 군경과 100여 차례 싸워 승리하였다. 민가의 피해를 최소화 하였으며 군자금을 빼돌리거나 비위를 일삼은 자신의 부하도 엄격하게 처벌하여 인근 주민들에게 신뢰를 받았다. 1909년 당시 500명 이였던 병력은 그 해 6월 11일 구례 헌병대의 기습읇 ㅏㄷ아 퇴각하고 일제의 의병대토벌작전으로 전투력을 상실하고 8월 해룡면 신성포를 거쳐 남해군 통영 연내도로 피신하였다. 1909년 12월 경 남은 의병 부대 해산 후 승주읍 두모리 은신처에서 은둔하다 1921년 7월 16일 발각되어 칼을 빼들고 헌병대장 「사오토」에게 중상을 입힌 후 저항하다 체포되었고 온갖 고문에도 비밀을 지키기 위해 혀를 깨물고 옥중생활 하다 12월 29일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공로를 인정받아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고 국가보훈처에서 "2006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지정되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 공훈을 널리 알리고자 이 표지판을 세웁니다.
2019. 11. 순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