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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중손 (나이미상) 대건고 졸업 구미 금성사 근무 1988년 11월 14일 운명 |29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평소에 글쓰기를 좋아하고, 술은 좋아하나 자제할 줄 알아 실수는 하지 않는 사람이며, 절대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청렴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동지는 ’97년 8월 12일부터 16일까지의 회사측의 휴업조치 이후 어용노조의 민 주화와 임금인상 파업농성과정에서 앞장서 싸웠고, 구미의 원평성당에 있는‘국민 운동본부’와‘카톨릭근로자센타’에혼자서상담을하러가기도했다고한다. 이 사실이 회사 측에 알려져 동지는 부산에 있는 관리자와 함께 며칠간 강제출 장(사실상 납치와 다름이 없다)을 보내졌으며 부산에서 올라온 이후에 다시 9월 5일부터 15일까지 출장명목으로 납치되었다. 관례와는 달리 동지에게는 출장비 마저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돈을 꾸어 써야 했고 납치과정에서 동지는 삶에 대 한 절망과 회의로 인해 연일 소주로 과음을 하여 9월초 쟁의가 끝난뒤 돌아왔을 때는 술자리에서 얼굴에 식은 땀을 흘리고 술잔을 든 손을 계속 떨었다고 한다. 이런 동지의 모습을 보고 가족들은 한결같이“사람이 변했다”고 했고 본인도“내 가 이상하니 정신병원에 가보자”고 해서 10일간 대구의 신경정신병원에 입원하 기도 하였다. 이때 동지는 휴직계를 냈는데 회사 측은 계속 약속을 어기고 복직 을 시켜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약7개월 만인 5월 5일에야 복직이 되어 현장 자재 창고에서 일하게 되었다. 사건당일 아침에도 웃으면서 출근하였는데 오후 5시경에“동지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부인이 영안실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회사 측에서 경찰을 불러 조 사를 끝내고, 현장을 치웠으며 주변 동료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등 모든 조치를 끝낸 상태였다. 경찰은 직원에게“수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 다”면서 열쇠를 가져갔다. 다음날 오전 10시경에야 사체를 보았을 때는 이미 깨 끗한 모습이었다. 회사 측의 얘기로는 12시 이후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오후 4시경에야 발견되었다는데 비해 동지의 동료인 남성택씨는 오후 2시 30분까지 같이 있었다고 엇갈린 진술을 했다. 동지의 죽음은 원천적으로 재벌대기업의 일반적인 노동운동 탄압책인“납치 극”에서 비롯되었다. 금성사는 고도의 노무관리로 동지의 죽음을 유도했으며 죽 음 당일까지 인사과에 불려가 심한 문책을 당했다고 한다. 끝내살리라 |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