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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쌍암고택에 서린 조선국 선산갑오동학농민전쟁의 역사
조선조 말엽에 경상도 선산군 선산읍성은 일본군에게 점령당하여 그들의 주둔지로 되었고 해평쌍암도 빼앗겨 일본군 탄약기지가 되었다. 침략자 일본군을 격멸하고자 작전을 짜던 총지휘 한문출 장군은 드디어 분연히 궐기하였으니 1894년(고종 31년) 갑오년 음력 11월 선산의 갑오동학농민군 500명을 규합 조직하고 총지휘하여 먼저 선산읍성은 일본군을 몰아냈고 이어 낙동강에 근접해 있는 쌍암고택의 일본군 탄약기지 및 병창부를 쓸어버리고 크게 승전하였다. 그러나 패퇴한 일본군은 대구 주둔군과 합세하여 신식무기와 대포를 앞세워 공격해오니 당할 수 없어 선산읍성과 해평탄약기지를 내주고 말았다. 이로 인하여 많은 피해가 있었고 한문출 장군은 겨우 죽장사로 피신하였다. 이러한 구국전투의 역사를 알리고자 1953년 선산군갑오동학농민전쟁유족회에서 일본군이 점령한 해평병창무기고를 선산갑오동학농민군이 격퇴했던 사적을 기록하여 표지목을 이곳에 세웠는데 훼손되어 한문출 장군의 증손 한명수는 쌍암고택에 서려있는 선산갑오동학농민전쟁의 역사와 그 당시 격렬했던 전투의 전적지임을 밝히는 표지석을 세워 국가 안보를 위한 경각심의 징표로 삼고자 한다. 2016년 4월 29일 동학학회후원회장 시조시인 성재 김학광은 짓고 전주 최씨안렴사공파 대종회 고문 최열, 선산갑오동학농민정쟁유족회 한상욱, 한상석, 한대희, 한지희, 한채은,선산갑오동학농민전쟁기념사업추진위원회 대표 오학수 세우다.
- 경상도 선산군 갑오농민전쟁기념시 -
갑오년 음력11월 매서운 낙동강 바람에 경상도 선산군 해평 등판에 자욱하게 눈이 나부낀다. 해평 습지엔 올해 따라 두루미도 날아들지 않고 멀리 금오산 자락이 어둠 속에서 더욱 을씨년스럽다. 30년 전, 사람이 곡 하늘이라 외치던 시대의 신 새벽 수운 선생이 인내천을 주장하다 경상감영에서 목이 잘렸다 세사오가 민심이 다시 어두워지고 있다 그 어둠을 등에 지고 흰 두루미같은 한 때의 흰 옷 입은 무리들이 이제는 일본 침략군의 병참기지가 된 최 부자네 고택을 향해 횃불을 높이 들고 돌진한다. 경상도 동학농민군 우두머리는 선산 출신 한문출 한정교 부자 농민군이다. 일찍이 무관의 집안에서 뼈를 굵힌 애족과 애민의 사람들 척양척왜, 보국안민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에 얼어붙은 낙동강물이 화답하듯 쨍쨍 얼음 갈라지는 소리를 내고 있다. 멀리 호남 땅에서는 동학농민군이 대패했다는 쓰디쓴 풍문이 들려오고 있다. 이 땅의 민초는 저 낙동 강변의 모래알이었다. 밟히고 채여도 말 못하는 잡풀이었다. 이제 이들이 일어섰다. 마지막까지 꺼지지 않은 횃불이 눈보라치는 경루 선산 해평들이 펄럭이며 비추고 있다. 대지의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가늘게 눈뜨고 그 불꽃을 응시하고 있다. (김용락 시인)
- 조선갑오동학농민전쟁 선산읍성전투에 부쳐 -
갑오년 11월 한밤중 드넓은 선산들판이 숨을 죽이고 있다. 향교 뒤 비봉산 부엉이도 충신이 돌아가시자 붉은 물이 흘러내렸다는 단계천도 숨죽인 칠흑같은 어둠뿐. 이따금 거친 사내들의 가쁜 숨소리만 낙남루 앞 앙상한 느티나무 잔자지를 매섭게 긁고 지나갔다. 북방의 기러기조차 말없이 남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선산 읍성 갑오 농민군 일찍부터 선산은 절조의 고장 더 이상 낫 놓고 기역자 모르던 무지랭이가 아니다. 반외세, 보국안민을 외치든 보름 전 있었던 우금치 전투의 처참한 패배를 여기서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이 땅의 오랜 주인 민중의 아버지와 아들들 선산, 무을, 옥성, 낙동, 도개, 해평, 산동, 고아, 구미의 갑오농민군 5백을 규합해 우두머리는 선산출신 한문출 총지휘로 일본 침략군의 주둔지가 된 선산읍성 점령에 나섰다. 헐벗은 처자식의 애원과 눈물이 11월의 마른 풀들이 질긴 철사줄처럼 농민군의 발을 묶어도 이제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다. 인간의 바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인간의 바른길을 가는 사람들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다.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 (김용락 시인)
朝鮮甲午農民軍衣冠平 義不識倭之分則 歷史之罪人也是以 我善山甲午農民戰鬪冬 日本軍罪滔天惡 朝鮮善山疆土淪入敵境 甲午十月二十九日韓文出 書(조선갑오 농민군들이 옷을 입고 갓을 쓰고서 왜놈에게 분간되는 의리를 못할면 역사에 죄인이 된다. 선산갑오농민 전투가 겨울을 맞아 일본군들의 침략 죄는 하늘에 사무칠만큼 말할수 없게 되니 조선나라 선산 땅은 일본 것이 된다.)
- 선산해평전투지에서 -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바치신 선산갑오동학농민근 낙동강물흘러가듯이 무한히 살으소서. 다시한번 살으소서. (1996.3.6. 미당 서정주) ※ 동학농민전쟁 참여후 돌아오지 못한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p.147...(중략) 바로 이 놈들이 공주, 삼례취회를 다녀온 근동의 동학우두머리를, p148 "선산 한교리, 성주 여성도, 상주 김현영, 예천 최맹순, 김산 편보언, 황간 조재벽, 영동 손해창, 청산 김성원, 옥천 박석규, 보은 김연국 등"...(중략), p264 선산에서는 한교리가 한정교 박성빈(박정희대통령아버지) 정인백(구미상모동)을 내세워 선산 옥성 낙동 상주 도개 해평 산동 고아 구미 등지의 동학농민군을 규합하여 일본침략군의 주둔지가 된 선산읍성을 함락했다...9중략) 채길순(2014). 웃방데기(갑오년 이야기)
p460-p463 대통령 박정희의 아버지이고, 대통령 박근혜의 할아버지이기도 한 몰락양반 출신으로 한다니 동학농민전쟁에 가담도 햇다. 박성빈은...(중략) 위의환(2013.12.30.) 장홍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평소 심하게 왜곡된 현대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생존지 "동학은 난이 아니라 혁명과 전쟁이다" 말씀하신 아버지께서 "할아버지는 선산동학농민전쟁 참여자였다"는 이야기도 종종 하셨는데 그때 철없는 시절 우리 역사에 큰 관심이 엇어 당시 아버지께 많은 것을 여쭈어 보지 못하였습니다(중략) 동학농민혁명 전쟁은 할아버님(휘자, 박성빈)시대 우리나라를 찾으려고 생명을 바쳤다. 또 우리 아버지(휘자. 박정희)시대 새마을운동이 태동하고 불붙던 역사의 현장(중략) 2015년 2월15일평화통일연구원 명예이사장 박근령(경기여고. 서울대졸업, 전.육영재단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