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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의 뒷부분은 너무 좁아서 촬영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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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1856년 8월 팔탈면 가제리에서 나시고 준엄하고 법도있는 훈도아래에 성장하시니 문장과 필법이 뛰어났으며 많은 문장을 남기셨으나 오늘에 전하지 않는다. 관에 오르셨으나 왜경의 집요한 압력으로 사임하시고 귀향하여 주경야독하시는 여기에 학당설치와 계몽에 힘쓰시다가 1916년 5월 1일 애제자를 이끌고 발안주재소를 급습하여 악질일경에 응징의 철추를 내리시고 이후 치밀한 계획과 용감한 행동으로 항일투쟁의 손길을 멈추지 않으셨다. 1919년 2월 1일 고종황제의 승하하심을 듣자 하루도 궐함없이 황성을 망곡하니 따르는 자 수천여명에 달하였다. 화성군민이 義에 용감하였던 것도 선생에 감화된 바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년 4월 5일에는 애제자 이연규(李演珪), 김영태(金永泰), 이우연(李愚然), 권종대(權鐘大)등과 함께 군내 팔백여명의 동지를 규합하고 장날을 이용하여 장터에 집합하였다가 정오를 기하여 일제히 만세를 외치며 정연하게 시가를 행진하였다. 대열이 발안주재소에 이르자 제지하는 왜경의 무기를 빼앗고 왜경을 주재소에 감금한 후 유유하고 늠름하게 시위를 계속하였다. 이를 들은 수원 주재 왜헌병 30여명이 급거 쇄도하여 지휘자인 선생을 창으로 난자하니 선생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시며 장렬한 최후를 마치시었다. -이정근의사 창의탑 비문 중에서- 출처 : 독립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