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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상곡리 전투. 전투개요 : 일시 1950년 7월 17일 12:00 ~18일 오전, 상주시 화서면 상곡리 일원, 전투부대:국군 17연대 1대대/북한군 제15사단 48연대
전투경과 : 육군 유일의 예비부대였던 17연대(중령 김희준)는 당시 제1군단에 배속되어 청주전투등에 투입되어으나 전황이 불리한 2군단 요청에 의거 7월 16일 24시 기준으로 2군단에 배속전환되어 충북 보은을 지나 함창으로 부대이동을 실시하고있었음(7.17, 04:00)
17연대의 선두부대로 출발한 1대대(소령 이관수)가 화령지역을 통과할 무렵 주민으로 북한군이 송계초등학교를 지나 상주방향으로 이동했으며 이 길로 계속가면 위험하다는 신고를 받음(7.17, 7:00), 이제 대대장은 1개대대로 상주방향으로 계속 진군함이 어려울것으로 판단하여 후속 부대가 올것을 기다리며 병력을 화령초등학교에 집결시키고 지역주민과 함께 상곡리 일대에 정찰을 실시 결과 상곡교 부근에서 적 전령1명을 체포하여 통신문을 입수함(7.17, 11:00) 상주에 먼저 도착한 북한군 선발대대장이 48연대장으로 보낸문서 "적48연대 본부대가 후속할 것과 송계초등 부근에서 휴식할것" 을 파악함. 1대대는 북한군 주력부대가 출현할 것을 예측하고 적을 공격하기 위해 구)송계초등학교 앞산 주변 도로변에서 100~200m 이격된 지역에 매복인력을을 배치하고 진지를 구축하는 등 전투태세를 완료하였음(7.17, 14:00)
16시경북한군 47연대 주력부대가 출현하였으며 예상했던 대로 매복지역 정면인 구)송계초등부근에서 휴식을 취하며 목욕을 하고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보고 대대장은 적을 한꺼번에 공격하기에 좀 더 좋은 여건이 되기를 기다람(7.17.16:00). 북한군이 식사를 위해 집결하자 대대장은 공격명령이 하달되고 1시간에 걸쳐 적을 섬멸하였음(7.17. 19:30), 일부는 인근 산으로 도망간 것을 18일 오전에 잔당 소탕작전을 전개하였음(7.18. 오전)
전투성과 : 사살250명, 생포 30명, 박격포 30문, 반전차포 7문, 소총 1,200정 등 노획. 전투의의 : 대구방향으로 진출하려는 북한군의 의도를 지연시켜 연합군의 낙동강 방서선 구축의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는데 기여. 17연대 전장병 1계급 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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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동관리 전투
전투개요 일시: 1950년 7월18일 10시~21일 14시, 장소 :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 일원(갈행재입구~청계입구), 전투부대 : 국군17연대 2대대/북한군 15사단 45연대
전투경과 국군17연대(중령 김희준) 1대대(소령 이관수)의 상곡리전투 승리후 도착한 연대장의 명령에 의해 갈령재부근으로 수색대파견(7,17. 10:00), 정찰에 나선 수색대대가 적 전령(2명) 생포(7.18. 12:30), 북한군 15사단장이 48연댜장에게 보낸 문서, "적45연대가 후속할 것과 48연대가 섬멸된 사실을 모르고있음" 을 확인. 연대장은 적45연대를 섬멸하기로 하고 2대대(소령 송호림)를 봉황산쪽으로 이동시키고 갈려애입구에서 청계입구 3km구간을 도로에서 100m이내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매복에 돌입함(7.18. 20:00~7.19.06:00). 977번 지방도인 갈령재를 넘어오는 적 보급부대발견, 7중대 진지 정면까지 나타나자 일제 사격으로 20여명을 사살하고 많은 양의 탄약과 식량등을 노획하였음(7.19. 14:00). 21일 5시경 어두운 안개속에 적45연대 출현, 적 선두가 아군의 6중대 방어진지앞까지 진입을 하였을때 북한군에 대해 일제히 사격을 실시하여 적을 섬멸(7.21.8:30)
전투성과 적 사살 356명, 생포 26명, 박격포16문, 대전차포 2문, 기관총53점, 소총 186점등 노획. 아군피해 전사4명, 부상 30명, 전투의의 대구방향으로 진출하려던 북한군의 의도를 지연시켜 연합군의 낙동강 방어선 구축의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는데 기여, 17연대 전장병 1계급 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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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탐방시에는 이곳에 상곡리 전투 안내판만 있었는데 동관리전투 안내판을 같이 합쳐서 하나로 합해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