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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으로 확산
광주에서의 시위는 먼저 인근 전남지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사회. 청년단체와 연계를 이루어 전국적으로 급속히 파급되었다. 서울지역의 학생들은 광주의 학생운동에 동조하여 두 차례의 대규모 시위를 벌임으로써 학생운동을 전국으로 확대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1929년 12월 초부터 학생운동은 본격적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주요 지방 도시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1930년 1월 중순부터는 도시지역 뿐만 안리라 읍.면 지역단위 학교까지 확산되었고 보통하교 학생들도 참여했다.
투쟁의 형태도 시험거부, 백지동맹, 동맹휴학, 격문살포, 교내시위, 가두시위 등으로 다양해졌으며 일본 식민지 지배권력과의 전문 충돌을 통한 민족의 독립획득을 주장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학댕들의 투쟁은 국내에 그치지 않고 중국, 일본, 연해주, 미주지역 등 해외로까지 파급되어 명실공히 3.1운동이후 최대의 항일민족운동으로 승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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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학생 청년 대중이여! 궐기하라.
제국주의적 침략에 반항적 투쟁으로써
광주학생 사건을 지지하고 성원하자!
우리는 이제 과거의 약자가 아니다
반항의 유혈이 있는 곳에
결정적 승리가 있는 것은
역사가 이를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단결하고 궐기하라!
전투적 반항으로써
학살당하고 있는 광주 학생들을
지지하고 성원하자
금후의 역사는 우리의 것이다.
- 1929년 12월 11일 휘문고교 교실에 살포된 격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