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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훈 (당시64세)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지에 안장 1939년 평안남도 진남포 출생 1962년 12월 사제서품 1962년 12월 신당동 천주교회 보좌 1974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결성 참여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 1977년 5월 동대문 천주교회 주임 1982년 9월 홍제동 천주교회 주임 1987년 고 박종철군 고문은폐출소 조작 사건 폭로 1988년 2월 왕십리 천주교회 주임 1996년 10월 시흥동 천주교회 주임 1998년 10월 고 최종길교수 의문사 진상규명 활동 1998년 11월 ‘인혁당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원회’활동 1999년 6월 ‘6월 민주항쟁 12주년 행사추진위원회’공동대표 2000년 3월 4.13 총선연대 시민대표 2003년까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후원회장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 천주교인권위원회 고문 지학순정의평화기금 부이사장 2003년 9월 2일 운명, 국민훈장 모란장 추서 |28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신자유주의시기 사회 동지의 삶과 죽음 ’62년 성직자로서의 삶을 시작한 동지는 평생을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 그리 고 고통받고 소외당한 이들을 위한 길을 걸어왔다. 동지는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결성에 참여하여 지학순 주교 석방을 위한 운동을 벌였으며 이후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전두환 군사독재에게 희생된 서울대생 고 박종철 군의 고문조작은폐사건을 폭로 하여 6월 민주항쟁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일으켰다. 또한 최종길 교수 의문사 진상규명과 인형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 등 민 주화의 과정에서 독재정권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아픔을 같이 했으며 이외 에도 고통받고 어려움이 있는 곳에는 항상 동지의 손길이 뻗쳤다. 또한 북한동포돕기와 사제단대표로 북한을 방문하는 등 통일을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던 동지는 65세의 나이로 이 땅의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기고 운명하 였다. ‘진실이나정의보다도더중요한것은이런‘사랑’이아닐까, 하고지금도생각한다. 정의구 현사제단이발족된이래, 내가이사회의정의와평화를이루기위해서나름대로관심을쏟아 온지가따져보면벌써25년이넘어가고있다. 그러나그원동력은항상‘사랑’이었다. 그사 랑은물론제2차바티칸공의회문헌중의하나인<사목헌장>에서말하듯이, ‘정의로운평화를 이루는사랑’일것이다. 그과정에서나는스스로에게“너는누구고천주님은누구신가?”라는 질문을끊임없이던져왔다. 어려움이클수록이질문에대한답변은곤혹스러웠다. 그러나결 국그질문에대한답변이곧나의그동안의삶이아니었나생각해보기도한다.’ - 동지의저서‘당신께서다아십니다’에서발췌- 끝내살리라 |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