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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5일 이른 새벽, 27일 동안 사경을 헤매던 그는 시민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산소마스크를 쓴 채 세상을 떠났다. 부검결과 최루탄 피격이 직접적인 사망원인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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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9일, 시민들은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그의 희생을 애도하며 '애국학생 고 이한열 열사 민주국민장'으로 장례식을 거행했다. 전국적으로 160여 만명이 참여한 추모속에 연세대학교 본관을 출발한 이한열은 신촌로타리와 서울시청 앞을 거쳐 고향인 광주 망월동 묘역에 묻혔다. 그의 나이 스물 두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