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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안동시 동편 낙동강 언덕위에 우뚝솟은 빗돌은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이 고장에서 태어난 뜻있는 지사들의 사적을 새긴 것이다. 지난 1910년 경술에 이르러 우리 겨레는 나라 잃은 가이 없는 슬픔을 부둥켜 안았다. 안동은 예로부터 문화의 고장이요 선비의 연총이다. 뜻 높은 선비가 유서깊은 고장에서 배출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무릇 한 나라 한 겨레가 외적의 쇠사슬에 얽매여 참담한 경지에 빠졌을 때 밭집 지아비는 호미를 놓고 길삼하던 지어미도 베틀에서 내려 반항할 줄을 알거늘 하물며 글 읽은 선비일까보냐. 혹은 의병을 일으켜 적에 대항하고 목숨을 스스로 버려 국은에 보답하고 압록강을 건너 주권 회복에 항쟁하기도하고 현해탄을 건너 적의 소혈에 투탄하고 혹은 파리강화회의에 글을 보내어 원억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오늘은 임시정부를 비롯 각기 사, 회, 단이라 하여 또는 지하의 비밀 조직을 갖기도 했으려니와 때로는 세계 만방에 정의를 밝히기도 하였다. 이에는 학자 종교인 학생 농민등 모든 계층이 한결같이 봉기하여 35년의 역사를 피빛으로 물들여 왔으니 그 우렁찬 함성은 지축을 울렸고 선열의 피끓는 구국정신은 창천을 감동 시켰던 것이다. 을유 광복의 벅찬 감격을 맞아 의당히 이 고장에 한 우람한 빗돌을 세워 선열의 뜻을 기리고 그 비장한 사적을 새겨 그 뜻을 천추에 전했어야 했을 것임에도 이에 이르지 못하였음은 다만 죄스러울뿐이다. 이제 남북 분단의 슬픔을 안은지 또 다시 36년에 이르는 오늘 이 소박한 돌에 간명한 글을 새겨 그 높으신 민족정기와 자주독립 정신을 후세에 길이 보전되기 위하여 문학박사 이가원이 글을 짓고 유시경 장기동이 글씨를 써서 이 비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