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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산 아래 등 넘어 사직단이 있고 향교와 마주하는 이곳 선형하에 하늘이 점지하신 효녀 덕님과 사랑하시던 막내와 그 아들 성대를 두어 모시게 한 후손 자양 조진록 명세 손 순숙과 함께 뜻을 모아 상석을 놓고 비석에 애절함을 적어 세우나이다. 아버지의 자는 홍백 호는 만운이며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수 군첨절제사와 조양임씨의 맏아들로 계미 2월 8일생이며 3세 고려 시중 문헌공의 24세손이고 15세 억령만취단의 정순왕후 외조부요 한림호당의 양관 제학 우참찬 문숙공 청백리 동국 명신을 파시조로 모셨으며 18세시 만춘헌공 정시문과 장원대사간의 증손인 석창 군자감 정이입 고창 6대손으로 추포문하교관 서예대가 효성이 지극하고 덕망이 높아 향교 표창 수차 3.1독립운동 주도 동참자 종제 동균과 김승옥이 국가독립유공자로 추서되고 상해임정 전북도 부감독 조선농인 사전무신간회 지부장 등 조국광복에 평생을 바쳤으며 광복 후 독립촉성국민회 주도 대한민국 초대 고창군수로 덕정을 베풀며 고창수리 조합창설 큰 공적을 남기시고 75세 2월 14일 서거 고창군 사회단체 연합장 성내 장학당에 독립운동 사적비를 남기시다. 슬하에 4남 5녀를 두셨어도 세 아들이 전란에 희생되여 둘째가 남았으나 서울대학에 유학 김성수 부통령 비서실장 김승문의 딸을 얻어 보람을 기대하였으나 시운이 불함하여 조상에 영광드리지 못하니 불효를 절감하면서 혼정 신성을 가훈 삼아 근본을 가르켜 씨문을 이끌어 종문으로 빛내기 가르치심이 실천되고 총중들이 국가 사회 놓여진 자리에서 제 역활을 다하니 좋은 결실을 기대하며 오로지 아버님의 은공으로 돌리고 가슴에 사무쳐 조상을 추모하며 ㄷ거업과 유훈을 만세에 기리고자 세계와 시말을 기록하여 아버님의 유업을 따르려는 마음과 조상을 섬기려는 맑은 향기가 자손들의 가슴마다에 더욱 진 하니 추모의 향화 영원히 그치지 않으리라. 단기 4326년 5월 2일 차자 희탁 글짓고 사손 양조 쓰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