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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황병학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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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광양(光陽) 출생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1908년 황병학 (黃炳學,字 英文,1876.1.11.-1931.4.23.)은 황순모 한규순 고견 등과 산포수 등 200여명을 모집하여 의병을 조직하고 백운산을 중심으로 항일 투쟁을 벌였다. 광양 망덕포로 이주해서 광양어민을 괴롭히는 일본인을 처단할 목적으로 망덕만에 정박해 있는 일본선박 10척을 습격하여 침몰시키고 일본인 주택을 불태우고 일본인을 사살하고 무기를 노획하였다. 그 후 광양군 옥곡원에서 일본헌병 경찰합동부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려 왼쪽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었음에도 의병 들을 독려하여 승전을 거두었다. 그리고 광양헌병분견소를 야습하여 무기 10여정을 노획하였고, 의병부대를 백운산기지에서 여천군 묘도로 이동하다가 일본군 헌병대의 습격을 받고 해상전투가 벌어져 많은 의병이 희생되었다. 1909년 9월 일본군의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의병부대를 해산한 후 여수, 고성, 순천 등지로 피신하다가 1919년 고흥인 기산도와 만나 상해 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을 모집 전달하다가 발각되어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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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국내 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임시정부 교통차장으로 활동하던 김철의 도움으로 중국 만주로 망명, 영고탑.용정촌.·흑룡강성 등지 에서 독립활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라는 비밀지령을 받고 국내에 잠입하다가 의주에서 헌병대에 피체,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아 평양형무소에서 4년의 옥고를 치르고 1927년 봄 출옥하여 귀향하였으나 옥고의 여독으로 1931년 4월 23일 영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으며, 이 비는 황병학 선생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서 1986년 8월 15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