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page
141page
의병장 전공 성범은 정선후인이요 려말 전법판서 채미헌공의 16세손이시다. 고 휘는 재연이요비는 거창신씨 재항지녀이시다. 고종 7년 경오 6월 13일에 함양 서하봉전에서 태어나셨고 배위는 하동정씨 환세지녀이시다. 고종 41년 갑진 령두에 일제가 노일전쟁을 유발하여 시세○승하자 대한제국을 보호국과 병합의 야욕하에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경국지존망이루○위기에 처하였다. 서기 1906년 병오 4월 13일 전 사헌부 지평 면암 최익현 선생은 정읍 무성서원에서 동양평화와 대한민족 자주성 수호를 위하여 8도사민이 총궐기대회를 열고 의병장 봉기 격문을 열읍에 하달하여 왜적과 항쟁을 선언하였다. 1906년 5월 면암 선생이 덕곡산에서 의병 봉기의 기치를 드높이자 설송장군은 선생 막하의 중군장이 되셨다. 1907 안의전투에서 의병 58인이 전사한 뒤 진주의병장 유종환과 합세하여 전북 용담 금산 영동에서 격렬하게 교전한 끝에 왜 수백명을 사상하였다. 4월에 거창전투를 벌였고 1911년 신해 정월 장수 양악대전에서 장군이 피체되여 대구감옥에 수감되었으나 즉시 탈옥하여 합천 대병 회동 유중원 씨 택에 피신하셨다. 그러나 얼마 후에 왜병에 다시 체포되여 목불인견의 잔혹한 고문과 7일 단식 끝에 1911년 신해 3월 7일 서거하니 향수 42세셨다. 배위 하동정씨 환세지녀는 무인 6월 14일에 태어나 경신 6월 21일 왜적의 치욕적인 고문 끝에 한 많은 삶을 마치니 향년 43세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