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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천 선생 휘현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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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는 매천 황현(黃玹 1855,12.11~1910.9.10) 선생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1966년 1월 10일 건립되었다. 본관은 장수(長水)이며 자 운경(雲卿) 호 매천(梅泉)이다. 1855년 12월 11일 전라남도 광양 출생으로 세종 때 명재상으로 덕망이 높은 황희 정승의 후손이다. 왕석보(王錫輔)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시문에 능하였다. 이후 서울로 거주하여 이건창(李建昌)등과 교우했고 1885년(고종22) 생원진사시에 장원하였으나 시국의 혼란함을 대탄하여 벼슬을 포기하고 전라남도 구례로 낙향하여 구안실(苟安室)이라는 작은 초가집을 짓고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했다. 1905년 11월 일본제국주의가 소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외교권을 박탈하자 황현은 통분을 금치 못하고 당시 중국에 있던 김택영과 국권 회복을 도모하려고 망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자 국치(國恥) 통분하며 절명시(絶命詩) 4편을 남겼으며 '나라가 선비를 양성한 지 500년이나 되었지만 나라가 망하는 날 한 명의 선비도 스스로 죽는 자가 없으니 슬프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남기고 1910년 8월 음독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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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영호남 선비들의 성금으로<매천집(梅泉樂)>이 출간되고 한말 풍운사(風雲史)를 담은 ≪매천야록(梅泉野錄≫은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 에서 <한국사료총서> 제1권으로 발간 되어 한말 역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되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1962년 황현 선생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리고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