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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훈(당시29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59년 전남 승주군 월등면 출생 1987년 전남 순천시 현대교통 택시운수회사에 입사 1988년 5월 24일 회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노동조합 탄압에 항의하여 분신 1988년 5월 30일 전남대 병원에서 운명 |27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현대교통 택시노동자로 근무하면서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 대변하는데 앞장서 오던 동지는 ’88년 2월 28일 자전거와 경미한 접촉사고가 발생하여 자비로 합의, 해결하였다. 이 일을 빌미로 3월 5일 과장은 동지에게 불리한 경위서를 쓰도록 강요했고, 동지가 이를 거부하자 일방적으로 승무 정지시키고 집단폭행하였다. 동지는 원통한 마음으로 검찰과 노동부에 고소와 탄원을 했으나 이들은 합의만 을 종용한 채 방관했다. 회사측은 고소에 대한 보복으로 노사협의회도 거치지 않 고 부당해고를 통지했다. 동지는 억울한 상황을 해결해 보고자 여수 노동부를 비 롯해서울에도 찾아가 보았지만 절차만을 따지면서무성의로 일관할 뿐이었다. 결국 ’88년 5월 24일 동지는 회사 사무실에서 몸에 신나를 끼얹고“뒤를 잘 부 탁한다. 이렇게 무시당하고 가정은 파괴당하고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 지 모르겠 다. 이놈의 세상 비통해서 살 수 없다”라고 외친 후 분신하였다. 동지는 분신 후 병원에서“회사에 대해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회사 측의 횡 포로 집단폭행 당시 비조합원 3~4명이 있었으며, 시민택시 조합원 1명, 회사조합 원 1명이 이를 말렸다. 그때 당한 폭행으로 치료비 170만원의 빚더미를 짊어진 채 하소연 할 길이 없어 사장, 상무, 과장 ○○○의 폭행에 분하고 원통해서 고소를 하였다”고 말하며 동료에게“여러분이 잘해라! 기죽지 말아라”, “내가 놀고 있을 때 나에게 짜장면 몇 그릇 사준 사람도 있었다. 고맙다. 회사는 1만원도 안 해주었 는데. 나를 위해 조합장 이하 조합원들이 데모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생이 많은 줄 잘 안다”고 말하였으며“사장, 상무, ○○○ 과장은 내 앞에 와서 무릎 꿇 고 사죄하면 조금은 용서해 주겠다”며“관계된 사람들과 힘 모아 밀어 붙여 꼭 복 수를 해야 한다”“잘 살아 선의의 복수를 꼭 해주라!”며 부인에게“소원이가 보고 싶다. 사는데 애로점이 있더라도 잘해 달라”는 등의 말을 남기며 운명하였다. 끝내살리라 |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