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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응삼은 충청북도 음성(陰城) 출신이다. 1907년 8월 23일 정봉준(鄭奉俊) 의진에 입진하였다. 당시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에 이어서 군대해산이 강행되자 서울의 시위대와 강화도의 진위대가 의병으로 전환하여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여 의병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보다 대중화되었다. 이에 강원도 원주에서 활약하고 있었던 의병장 이은찬(李殷瓚)·이구재(李九載)가 5백 명의 의병을 모집하고 7월에 이인영(李麟榮)을 찾아가 총대장이 되어 줄 것을 청하였다. 이인영은 이를 승낙한 후 강원도 원주로 출진하여 관동 창의 대장에 오른 후 사방에 격문을 발하여 의병을 소모하였다. 이리하여 원주를 중심으로 하여 13도 연합 의진이 구성되고 있을 때, 이에 고무를 받은 조응삼은 1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총기를 가지고 지평(砥平)·원주 등지에서 9월 중순까지 군자금 모금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그가 체포된 직후 그의 부대는 이인영의 13도 연합 의진 휘하에 흡수되어 서울 진격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그에 앞서 체포된 조응삼은 공주 지방재판소로 압송되어 소위 폭동죄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