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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026년 3월 Column     명사 칼럼 작은 소리 큰 울림 망국을 부추긴 지배층의 부정부패 조선왕조 후기, 특히 말기의 역사를 보면, 지배층 또는 왕실의 부정부패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새삼 깨 닫게 된다. 민비와 그 척족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고 종 스스로 매관매직을 일삼았으며 백성에 대한 탐학 (貪虐)이 너무 심했다. 조선강점을 노린 일본은 고의 적으로 이것을 부추겼다. 예컨대, 벼슬을 사려는 사 람에게 접근해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어 그 돈으 로 관직을 얻은 이가 그 일본인에게 의지하고 그의 속셈에 맞춰 언동하도록 유도했다. 고종은 뒤늦게나 마 국운을 유지하고자 1897년 10월 12일에 ‘대한제 국(大韓帝國)’의 성립을 선포했다.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채택하고 나라의 주권과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지배층의 부정부패는 계속되었고 고종 스스 로 심약하면서 무능해 나라 안팎으로 밀려오는 도전 과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다. 조선왕조는 일제의 침략으로 망국을 맞은 것이 틀 림없으나, 자체의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무너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우 리에게는 잊어서는 안 될 뼈아픈 교훈을 남겨준다. 국정의 운영자들은, 특히 정치인들은 언제나 개 인 적 · 당파적 이익을 버리고 국익이라는 차원에서 깨끗 하면서도 꿋꿋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107주년을 맞아 다시 높이 평가하게 되는 3 · 1독립운동의 정신 1910년 8월 ‘경술국치(庚戌國恥)’로 국권을 잃은 뒤 이 나라의 민중은 지난날에도 그러했듯 일제를 상대로 감연히 저항하고 투쟁했다. 그 대표적 사례 가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일어난 독립운동이 었고, 그 연장선 위에서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 이었으며 임정 아래서의 한국광복군의 활동이었다. 임시정부와 광복군의 물질적 기반은 취약했다. 굶주 림은 일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과 자신 가족의 안위에 연연하지 않고 조국의 광복을 찾아야 한다는 위대한 정신으로 자신들을 지탱시키며 싸웠다. 이번 에 3 · 1운동 107주년을 맞은 우리는 그 어른들의 높 은 정신을 다시 기리게 된다. 3 · 1독립선언서(독립기념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