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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복단(회) 약사 대한광복단은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병합된 뒤 조국광복을 목적으로 결성된 비밀결사인 최초의 독립운동단체이다. 1912년에 대한광복단 결성에 착수하여 1913년 경북 풍기에서 전국 각지의 의병출신 지사들을 주축으로 애국지사들이 모여 채기중을 중심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무장 비밀결사인 대한광복단을 조직하여 조국광복운동을 전개하였다. 1915년 대한광복단의 채기중등은 대구에서 박상진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국권회복단 및 만주에서 활동하던 이관구와 통합하면서 대한광복회로 조직을 확대하여 국내및 만주등지에서 활동하던 애국지사와도 연계하여 거국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吾人은 대한독립광복을 위하여 吾人의 생명을 희생에 供함은 물론 吾人의 일생에 목적을 달성치 못할시는 子子孫孫이 계승하여 讐敵(수적) 일본을 완전 구축하고 국권을 광복하기까지 절대 불변하고 일심 戮力(육력)할것을 천진신명에게 誓告(서고)함'이라고 혈맹하고 아래와 같이 강령을 발표하였다. - 부호의 의연금 및 일인이 불법 징수하는 세금을 압수하여 무장을 준비한다. - 남북 만주에 군관학교를 세워 독립전사를 양성한다. - 종래의 의병 및 해산 군인과 만주 이주민을 소집하여 훈련한다. - 중국등 여러 나라에 의뢰하여 무기를 구입한다. - 본회의 군사행동.집행.왕래 등 모든 연락 기관의 본부를 상덕태상회에 두고, 한만 요지와 북경.상해 등에 그 지점 또는 여관, 광무소 등을 두어 연락 기관으로 한다. - 일인 고관 및 한인 반역자를 수시 수처에서 처단하는 현행부를 둔다.- 무력이 완비되는 대로 일인 섬멸전을 단행하여 최후 목적의 달성을 기한다. 대한광복회는 이와같이 투쟁 방략을 수립하고 수십여개의 상회를 설립 독립운동연락기관으로 삼아 만주와 연해주에 독립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여 무력으로 국권을 회복할 원대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따라서 박상진이 국내 총사령이 되고 이석대가 부사령(만주사령관)으로 만주지방을 담당하였다가 순국하자 김좌진 부사령(만수사령관)으로 만주지방을 담당하였다. 대한광복단(회)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시켜 나가기위해 전국 각도에 지부를 설치하였다. 경상도(채기중) 충청도(김한종) 전라도(이병호) 경기도(김선호) 함경도(최봉수) 평안도(조현균) 황해도(이관구) 강원도(김동호)를 담당케하여 지부장이 각 지방의 부호를 조사한 후 공고문을 보내어 의연금을 권유하는 동시에 일제가 징수한 세금을 압수하여 무기를 구입하기로 하였다. 초기 활동중 주목되는 것은 1915년에 일제가 영일,영덕,경주에서 강제로 거든 세금 팔천칠백원을 빼앗아 군자금으로 충당하였고 1916년 보성군 조성의 일본 헌병대 분소를 습격하여 장총,군도,권총을 탈취하고 이어서 일경과 그 주구제거를 위해 활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우재룡이 중국 안동에서 발흥한 통고문은 대부호로 국한하였고 소재산가들에게는 각 지부별로 고시문이나 경고문을 제작 발송하여 모금을 하였다. 모금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통고문의 효력을 높이고 모금을 원활히 하기 위해 친일부호를 처단하는 의열투쟁을 전개하였다. 의열투쟁은 모금을 원할히 하기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식민지 권력에 안주하려는 친일세력들에게 민족적 응징을 통해 경각심을 고취시키기 위한것이기도 했다. 1916년에는 전라도 보성과 벌교에서 친일부호를 처단하고 만주에서 활동하던 이관구등이 조선 총독 암살을 시도하기도 하였고 군자금 모금 마련을 위하여 대구에서 권총사건을 일으켜으며 1918년에는 경북 칠곡에서 1918년에는 충남 도고에서 친일부호를 처단하고 그 자리에는 반드시 '日維光復 天人是籍 聲此大罪 戒我同胞 聲戒人 光復會'란 경고문을 남기어 각성을 촉구하였다. 이렇듯 대한광복단(회)의 활동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일제는 헌병과 경찰을 총동원하여 수사망을 펴 등 거약의 정보비를 뿌리며 혈안이 되어 1910년 1월 천안 거주 이종국이 천안경찰서에 밀고하여 마침내 대한광복단(회) 조직이 발각되어 핵심인사가 모두 일경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1920년 주비단의 우재룡 권영만과 김상옥의 '암살단'에 합류한 한훈등이 활동중 체포되었으며 수백여명 단원중 60여명이 체포되어 1921년 9월에 박상진 김한종은 대구형무소에서 채기중 김경태 임세규 강순필은 서대문형무소에서 처형 순국하였으며 장두환은 마포형무소에서 혹독한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이밖에 체포된 단원들은 가혹한 고문과 고된 옥고를 치렀으니 일제의 혹도한 옥살이를 그 어찌 글과 말로 다하랴. 1910년대의 대한광복단(회)는 일찍이 공화주의를 표방하였으며 우리나라 독리붕ㄴ동사중 단일사건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으며 1919년 독립운동과 1920년대 이후의 독립운동에도 큰 영향을 독립운동단체이기도 하다. 대한광복단(회) 동지들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고 오직 조국광복을 위해 희생된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며 후세에 역사적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이 글을 남긴다. 2004년 10월 19일 문학박사 김창수 지음 솔뫼 정현식 씀